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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껌 할머니’ 추모 발길 이어져…“가난해도 베푸는 삶”

입력 | 2020-12-27 17:48:00


“늘 주변과 나누며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어요. 좋은 곳에서 편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4일 오후 서울 지하철2호선과 신분당선을 잇는 강남역의 환승계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평소보다 인파가 줄어든 이곳 한 구석에 꽃다발과 편지가 잔뜩 쌓여있다. 무심코 지나가기엔 인자하게 웃는 한 할머니의 사진이 가운데 놓여있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곳에선 주변에서 ‘강남역 껌 할머니’라 불리던 한 노점 상인이 최근까지 장사를 해왔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던 할머니는 이달 8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인을 그리워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시민 유중갑 씨(29)는 크리스마스이브인 이날도 이곳을 찾았다.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할머니 추우실까봐” 사진에 빨간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었다. 6년 전 봉사활동을 하다 할머니와 인연을 맺은 그는 별세 소식을 들은 뒤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찾고 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서울에서 홀로 지내던 저에겐 친할머니 같은 분이셨어요. 저는 물론이고 모두를 위해 항상 기도해주시는 따뜻한 마음이 가득하셨죠. 자녀분들도 계시지만, 아직 건강한데 손 벌리기 싫다고 하시며 장사를 이어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추모공간을 찾는 건 유 씨뿐만이 아니었다. 시민 A 씨는 “언제나 마주쳤던 할머니가 올 겨울엔 더 추워보여서 코트를 가져다 드리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진 옆에 놓인 한 편지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뵈었는데 벌써 대학 졸업을 앞뒀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건넨 게 너무나도 후회스럽다”는 글도 보였다.

그저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을 고인을 사람들은 왜 이렇게 그리워할까. 인근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는 하모 씨(51)는 “할머니는 음식이 생기면 주변 상인들에게 나눠주셨던 분”이라며 “추울 때마다 할머니 드리려고 따뜻한 캔 커피를 잔뜩 사뒀는데…”라며 한숨지었다. 환경미화원 B 씨는 “최근엔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 2개를 짚고서야 겨우 화장실에 다녀오시곤 했다”며 “그런데도 언제나 쾌활한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셨다”고 떠올렸다.

최근 이 공간엔 시민들이 음식 등을 두고 가는 경우도 많다. 유족의 허락을 얻어 이곳을 돌보고 있는 유 씨는 “넉넉하지 않아도 베푸는 삶을 사셨던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음식 등 나눌 수 있는 물품들은 어려운 분들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역 관계자는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시민이 많고 유 씨 등이 자발적으로 관리해주고 있어 특별히 제지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