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주변과 나누며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어요. 좋은 곳에서 편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4일 오후 서울 지하철2호선과 신분당선을 잇는 강남역의 환승계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평소보다 인파가 줄어든 이곳 한 구석에 꽃다발과 편지가 잔뜩 쌓여있다. 무심코 지나가기엔 인자하게 웃는 한 할머니의 사진이 가운데 놓여있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곳에선 주변에서 ‘강남역 껌 할머니’라 불리던 한 노점 상인이 최근까지 장사를 해왔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켰던 할머니는 이달 8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인을 그리워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서울에서 홀로 지내던 저에겐 친할머니 같은 분이셨어요. 저는 물론이고 모두를 위해 항상 기도해주시는 따뜻한 마음이 가득하셨죠. 자녀분들도 계시지만, 아직 건강한데 손 벌리기 싫다고 하시며 장사를 이어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추모공간을 찾는 건 유 씨뿐만이 아니었다. 시민 A 씨는 “언제나 마주쳤던 할머니가 올 겨울엔 더 추워보여서 코트를 가져다 드리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진 옆에 놓인 한 편지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뵈었는데 벌써 대학 졸업을 앞뒀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건넨 게 너무나도 후회스럽다”는 글도 보였다.
그저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을 고인을 사람들은 왜 이렇게 그리워할까. 인근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는 하모 씨(51)는 “할머니는 음식이 생기면 주변 상인들에게 나눠주셨던 분”이라며 “추울 때마다 할머니 드리려고 따뜻한 캔 커피를 잔뜩 사뒀는데…”라며 한숨지었다. 환경미화원 B 씨는 “최근엔 거동이 불편해 지팡이 2개를 짚고서야 겨우 화장실에 다녀오시곤 했다”며 “그런데도 언제나 쾌활한 모습으로 주위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셨다”고 떠올렸다.
최근 이 공간엔 시민들이 음식 등을 두고 가는 경우도 많다. 유족의 허락을 얻어 이곳을 돌보고 있는 유 씨는 “넉넉하지 않아도 베푸는 삶을 사셨던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음식 등 나눌 수 있는 물품들은 어려운 분들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