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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량 거래제에서 본 타협의 미학[김세웅의 공기 반, 먼지 반]

입력 | 2020-12-28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벌써 연말이다. 정말 힘들었던 2020년도 작별해야 할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다. 필자가 올해 특히 크게 안타깝게 느꼈던 뉴스는 미국 연방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별세 소식이었다. 2000년대 초반 유학을 떠난 이후 미국 대법관이 누군지 한동안 관심 없이 살다가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초 국정연설 자리에서 그녀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았다. 이후 인터뷰에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국정연설 전 다른 대법관들과 가진 식사 자리에서 와인을 한잔해서 그랬다”고 말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그 후 그녀의 삶의 행적에 대한 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2015년 하버드대에서 래드클리프 메달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한 충고가 인상 깊었다. “여러분이 정말 마음속에 열정을 갖게 만드는 것을 위해 싸우세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를 수긍하고 당신의 싸움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는 방식을 취하십시오.” 실제 그녀는 평등을 위해 평생 싸우면서 그녀와 법 해석이 다른 법률가들에게까지 존경을 받는 법관으로 평가받았다.

환경 문제에서 제도적인 개혁을 이뤄낸 인물들을 살펴보면 긴즈버그와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마음속에 지닌 열정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1975년부터 약 40년 동안 연방하원 의원을 지내고 은퇴한 헨리 왁스먼 전 민주당 의원은 미국 대공황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 정책을 통해 부친의 개인 사업이 살아남은 사실을 떠올리며 연방정부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믿음을 키웠다고 한다. 이러한 믿음 속에 1970년 최악의 상황이었던 로스앤젤레스의 대기환경 개선에 의정 활동의 초점을 맞췄다.

그는 1990년 미 연방 대기환경법 개정안을 조지 부시 대통령 행정부와 같이 통과시키면서 대기환경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공화당 소속의 부시 대통령은 왁스먼 의원과는 다른 신념을 가졌다. 그는 정부가 국민의 삶과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해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대기환경 악화에 따른 부작용을 인정한 부시 대통령은 왁스먼 의원과의 긴 줄다리기 끝에 대기 환경법 개정안을 공포하기에 이른다.

특히 이 법안은 최초로 ‘배출량 거래제’ 개념을 정립하였고 당시 미국 전력 생산의 주력이었던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아황산가스에 이 개념을 적용했다. 석탄 화력발전소가 집중되어 있던 미 중서부 오대호는 아황산가스에서 만들어지는 산성비로 큰 피해를 입었다. 캐나다 접경지역에서 산성비가 일으킨 식생 파괴 문제는 당시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당시 ‘배출량 거래제’는 극단적 환경운동가들에게는 ‘도덕적 해이’나 ‘환경파괴 면허’ 등으로 비판받았다. 반대로 극단적 시장경제 옹호자들에게는 ‘전기 요금을 올리는 원흉’, ‘고용 파괴 행위’라는 원색적인 비난에 직면했다. 시장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존중한 이 규제는 아황산가스를 제거하는 기술 개발을 촉진시켰다. 그 결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산성비 문제가 더 이상 환경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전을 이뤄냈다. 이 대기환경법 개정안으로 매년 23만 명이 대기오염으로 희생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미세먼지 문제, 기후변화 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 문제에 열정적인 의견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회적 담론이 양극화되면서 긴즈버그 대법관이 이야기했던 ‘다른 사람들을 수긍하게 하는 노력’이 간과되곤 한다. 우리가 당면한 사회 문제들은 우리가 모두 한편이 되어도 대응하기 어렵다. 목청을 높여 자신의 열정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려는 노력 역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 최근 온건파 정치인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민주 공화 양당의 중도 성향 의원들이 모여 그간 답보 상태에 있었던 2차 코로나 부양책을 발의했다. 양당 의원들은 크리스마스에 빈손으로 지역구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부담감에 이를 통과시켰다. 새해에는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타협의 모습이 많이 나타났으면 한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