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가운데)이 한국군 지휘부와 함께 경기 포천시 미 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실시된 포병 실사격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 출처 주한미군 페이스북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정부 안팎에서도 걸핏하면 돈(방위비) 문제로 주한미군 감축을 압박한 트럼프의 ‘동맹 옥죄기’에서 탈출한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이달 초 미 의회가 주한미군 주둔 규모를 현행(2만8500명)으로 유지하는 내용의 국방수권법안(NDAA)을 처리한 것도 바이든 당선인의 동맹 중시 의중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동맹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게 잘 관리되면서 전통적 혈맹 관계가 복원될 것으로 낙관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흘러갈 수 있다. 북-중 위협과 역내 안보 도전이 거세질수록 미국은 정권과 정파를 초월해 자국에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해외 주둔 미군을 운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동맹의 ‘최대 난제’가 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필자는 본다. 벌써부터 그런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얼마 전 미 의회가 해외에 미군 병력이나 주요 군사장비를 배치할 때 주둔국에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사용하는지를 고려하겠다고 선포한 것을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독일과 일본 다음으로 많은 미 지상군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같은 전략무기가 배치된 한국에 미칠 여파는 만만치 않을 것이 자명하다.
군 관계자는 “미중 갈등이 ‘임계점’으로 치달을수록 대북방어용 붙박이군인 주한미군의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미중 갈등 양상에 따라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을 둘러싼 국내 변수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양측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극명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한국의 조속한 전환 방침에 미국은 북핵 고도화 등 안보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특정 시한’을 정해 전환을 강행하면 양국군과 국민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각을 세웠다. ‘조건 충족 후 전환’ 기조는 바이든 행정부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전작권 전환을 군사주권 문제로 접근해 밀어붙인다면 주한미군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한편 자칫 주한미군을 자주국방의 걸림돌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연합훈련 중단 장기화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북관계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3년째 대규모 연합훈련이 취소되면서 유사시 한미 대북 억지력에 공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소음 민원 등으로 실사격 훈련이 취소되는 등 주한미군의 훈련 부족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군 안팎에선 주한미군 문제가 트럼프 행정부에선 방위비를 매개로 한 ‘일차방정식’이었다면 바이든 행정부에선 국내외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고차방정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주한미군은 한미 연합방위의 주축이자 역내 균형자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북한 도발 억지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전략적 구도에서 우리의 안보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선 보다 정교하고 신중한 동맹 전략이 강구돼야 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