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얘는 사회성이 떨어져요.” 진료를 온 부모가 말한다. 그럴 때 나는 어떤 면을 그렇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부모는 “아니, 아이가 친구랑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잘 못 어울려요.” 그러면, 놀고 싶어 하는 것 같기는 하냐고 묻는다. 부모가 그렇다고 하면 이번에는 “어떨 때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으세요?”라고도 묻고 “엄마는 아이의 어떤 행동을 못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라고도 묻는다. 되도록 ‘부모의 언어’로 일상에서의 아이의 행동을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씩 접근해 가다 보면 아이의 문제는 의외로 ‘사회성’이 아닌 경우가 있다. 부모는 “얘는 너무 공격적이에요”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전혀 공격적이지 않다. 또 “아이가 버릇이 없어요”라고 걱정하지만, 사실 부모 자신의 어린 시절 양육환경 탓에 갖게 된 생각일 때도 있다.
사회성이 떨어진다, 고집이 세다, 말을 안 듣는다, 공격적이다, 자폐 성향인 것 같다,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인 것 같다, 화를 잘 낸다, 짜증이 많다, 버릇이 없다, 사춘기여서 그렇다…. 이렇게 아이의 행동을 규정짓는 개념어들은 정작 아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념어의 보자기 안에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다 싸버리고는 ‘짜증쟁이’라고 말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짜증은 화가 나서 낼 수도 있고, 걱정 때문에 낼 수도 있고, 아파서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짜증쟁이’라는 보자기에 모두 싸버리면 더 이상 고민할 것이 없어진다. 아이가 짜증을 낸 진짜 이유에는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아이의 행동을 지나치게 빨리 규정하면 문제에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아이를 이해하고 파악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너무 빨리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먼저 부모의 언어로 생활 속에 보이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았으면 한다. ‘부모의 언어’란 부모가 현장에서 아이가 보이는 모습을 좀 더 자세하게 관찰하고 일상의 언어로 자연스럽고 쉽게 표현한 것을 말한다. 부모의 관찰에는 부모 나름의 생각과 느낌이 담겨 있다. 그것에는 굉장히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
화를 많이 내는 아이가 있다고 치자. 그럴 때 보통 “너 왜 화를 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말은 아이가 왜 화를 내는지 궁금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이미 “왜 화를 내!”라고 나무라는 것이다. ‘얘가 지금 왜 화를 낼까?’ 하고 진정으로 궁금하다면, 그렇게 말하기보다 아이가 화를 내기 전 상황들을 생각해 봐야 한다.
부모들은 왜 이렇게 빨리 아이의 행동을 규정지어 버릴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빨리 규정해서 빨리 해결 방법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해결 방법을 찾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견디기 때문이다. 너무 불안해서 빨리 고쳐 놓고 싶다. 그래서 증거와 자료를 충분히 모아서 차근차근 생각해 보는 중간 과정의 단계를 밟아가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부모 마음 안에 내 아이는 내가 잘 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아이에게 맞는 방식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키우게 된다.
아이의 행동을 ‘부모의 언어’로 말하려고 하다 보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더욱 집중하게 된다. 키워진 양육 방식이나 듣거나 본 양육 이론보다 지금 내 눈 앞에서 일어난 상황, 내 눈에 보이는 내 아이의 행동에 최대한 집중하게 된다. 그것은 아이를 잘못 이해하는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부모라고 아이를 다 알 수는 없다. 부모는 아이를 잘 안다고 자부하기에 앞서 아이를 알아가려고 가장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