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
토요일,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에 닿았다. 상기된 얼굴의 J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결론을 이야기하면 유흥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말로만 듣던 J의 오랜 친구와 간단히 저녁만 먹는다는 게 그만 본의 아니게 절친이 되어, 초저녁에 숙소로 초대해 함께 웃음꽃을 피웠다. 눈을 뜨니 일요일. “술은 역시 낮술이지!” 밤새워 놀겠다는 야망이 무색하게 꿀잠을 자버린 것에 대한 자괴감을 애써 감추며 말하자, J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있지, 엄마가 집에 초대하고 싶어 하셔.”
어머니께서는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서 와. 식사 준비가 덜 돼서 구경 좀 하고 있을래?” 손때 묻은 액자에서 J의 역사가, 아기자기한 장식에서 J의 성정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특히나 이렇게 성장의 기록이 선연한 공간은. 신혼집이나 자취방은 왕왕 방문했지만 어디까지나 성년의 취향과 의도로 편집된 기록이었다. 그것들이 오늘을 말하는 공간이라면, J의 방은 오늘을 있게 한 공간이었다. 낯선 듯 반가운 감정이 되살아났다. 오래전 하굣길 친구 집에 들렀을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코로나19로 외식이 조심스러워지면서 ‘홈 파티’가 늘었다. 타인의 공간에 방문할 일도, 초대할 일도 많아진 것이다. 기존에는 집에 부를 정도는 아니었던 사이들이 쉽사리 그 범주 안으로 편입되었다. 초대하는 이는 방문할 이들의 경로와 식성을 염려했고, 방문하는 이들은 초대한 이의 선물 취향을 고민했다. 그 기저에는 찾아올 이들에 대한 신뢰와 내어준 이에 대한 감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 유무형의 공간을 공유한 후에는 실제로도 훨씬 가까워져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외로운 시기에 가장 따뜻한 환대를 경험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조심스럽다. 길고 긴 터널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지나고 있다. 부디 이 끝에는 빛이 있길, 그리하여 이 암흑에서 배운 환대의 온기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날이 오면 못다 이룬 ‘불토’의 꿈을 안고 다시 부산을 찾으리라. 그때 나는 친구의 이야기가 깃든 공간 대신 ‘힙’하다는 술집을 향해 발길을 돌릴 수 있을까. 글쎄, 역시 자신이 없다.
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