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카드 하승우.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후반기 열쇠는 하승우(25)가 쥐고 있다.”
프로배구 남자부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은 28일 인천 대한항공전 승리로 전반기를 마감한 뒤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시즌 초반 하승우가 ‘불펜 선동열’ 모드였다는 점이다. 야구에는 불펜에서는 선동열 못지않은 구위를 자랑하다가도 막상 경기에 나가면 ‘배팅볼’만 던지다 마운드를 내주는 투수가 적지 않다. 이런 투수를 일컫는 표현이 바로 불펜 선동열이다. 하승우 역시 연습 때나 백업 세터로 나왔을 때와 주전으로 경기를 조율할 때 차이가 컸다.
우리카드 이호건.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결국 하승우는 세 경기 만에 이호건(24)에게 주전 세터 자리를 내주고 5경기를 벤치에서 시작했다. 그렇다고 신 감독이 이호건 쪽으로 아예 마음을 기운 건 아니었다. 신 감독은 하승우가 ‘닭장’만 지키고 있을 때도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진 것 같다”며 “하승우가 성장해야 팀에 비전이 있다”고 강조했다.
신 감독이 다시 하승우에게 주전 세터 자리를 맡긴 건 지난달 24일 인천 방문 경기 때부터였다. 비록 우리카드는 이날 대한항공에 1-3으로 무릎을 꿇었지만 하승우는 예전과는 다른 세트 내용을 선보였다. 이날 하승우가 대한항공 블로커가 없거나 1명인 상태로 팀 동료가 공격할 수 있도록 공을 띄운 건 총 32번으로 세트당 평균 8번꼴이었다. 하승우는 앞선 경기 때는 이런 일이 세트당 평균 2.17번밖에 없던 세터였다.
국제배구연맹(FIVB) 홈페이지 캡처
한국배구연맹(KOVO)은 그저 ‘세트 성공’ 횟수를 기준으로 세터상 수상자를 결정하지만 국제배구연맹(FIVB)은 세터가 띄운 공을 ‘러닝(running) 세트’와 ‘스틸(still) 세트’로 구분한다. 상대 블로커가 없거나 1명일 때가 러닝 세트, 2명 또는 3명일 때가 스틸 세트다.
주전 세트로 돌아온 뒤 하승우는 27일 역시 인천 방문 경기 때까지 10경기를 소화하면서 한 세트에 러닝 세트를 평균 6.56번 기록 중이다. 만약 하승우가 시즌 처음부터 이런 기록을 남겼다면 OK금융그룹 이민규(28)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이 기록이 높은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블로킹을 ‘벗기는’ 실력이 늘어나면서 하승우가 세팅한 공을 상대 코트로 때린 동료 선수들 공격 효율 역시 0.279에서 0.382로 올랐다. 팀 동료 선수를 평균적으로 대한항공 정지석(25·공격 효율 0.385) 수준으로 만드는 세터로 거듭난 것이다.
김명관과 유니폼을 바꿔 입은 황동일(34)은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에서 세트를 10번밖에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기록을 사실상 한국전력에서 남겼다고 봐도 된다. 한국전력으로 옮긴 뒤에는 기록한 세트는 총 709개다.
여자부에서는 KGC인삼공사 염혜선(29)이 세트당 러닝 세트가 가장 많은 세터지만 한국도로공사 이고은(25) 역시 염혜선에게 뒤진다고 보기 어려운 기록을 남겼다. 반면 흥국생명 이다영(24)이 세트당 러닝 세트 4.66개로 제일 상대 블로킹을 여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현대건설에서는 김다인(22)이 코트를 지키는 일이 더 많아서 이나연(28·세트당 평균 4.6개)보다 평균 기록이 많다. 그러나 전체 세트 가운데 러닝 세트 비율을 보면 이나연(26.7%)이 김다인(20.8%)보다 상대 블로킹을 잘 여는 세터라고 할 수 있다.
황규인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