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 유지가 생명… 백신 항공수송 현장 가보니
28일 강원 춘천시에서 생산한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가 담긴 백신 상자 모습.
29일 오전 10시, 러시아 모스크바행 아시아나항공 화물기 OZ795편 출발 30분 전. 아시아나항공 화물 담당 직원 무전기로 한국에서 위탁 생산한 러시아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V’를 화물로 옮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화물 터미널 냉동창고에 보관하던 스푸트니크 백신이 컨테이너에 담겨 운반차에 실려 나왔다. 운반차는 백신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시속 5km 이하로 천천히 움직였다. 화물기 앞에 도착하자마자 ‘로더’(화물을 화물기로 올리는 기계)로 백신을 화물기에 실었다. 백신이 보관창고에서 나와 화물기에 실리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아시아나항공의 국내 첫 코로나 백신 항공 수송 작전은 이렇게 진행됐다.
정원석 아시아나항공 백신 태스크포스(TF)팀장은 “백신을 화물칸 제일 마지막에 실은 건 도착해서 가장 먼저 내리기 위해서다. 보관창고에서 나와 10분 안에 실을 수 있도록 동선을 짜 수도 없이 연습했다”고 설명했다.
“화이자 운송 노하우 알아내기 첩보전 방불”
백신 항공수송 현장
백신은 생산이 되면 백신 제조사가 만든 상자나 특수 용기에 담긴다. 이후 특수 냉동창고가 달린 차량에 실려 항공사 화물 터미널이나 보관 시설로 옮겨진다. 보관, 운송 시 온도를 맞추지 못하면 백신 품질에 문제가 생겨 사용이 불가능하다. 영하 70도에서 보관해야 하는 화이자 백신은 영국과 독일 일부 지역에서 운송 중 온도를 못 맞춰 접종을 전면 중단하고 백신을 폐기했다.
화물 터미널 한편에는 디지털 온도계가 달린 특수 컨테이너가 깔려 있었다. 영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특별 컨테이너다. 72∼100시간 동안 특정 온도가 유지된다. 전기로 컨테이너를 충전해 온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화물 터미널에 충전 인프라를 기존보다 배 이상 설치했다. 특수 컨테이너라고 해도 설정은 영하 25도까지만 가능하다. 영하 70도로 운송할 때는 컨테이너에 백신 상자를 넣고 드라이아이스를 가득 채워 온도가 더 떨어지도록 한다.
백신 운송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일도 벌어졌다. 화이자 백신이 처음으로 벨기에에서 미국으로 운송된 날, 아시아나항공 벨기에 근무자들은 백신 운송 노하우를 익히려고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백신 운송 방법에 따라 항공기에 실을 수 있는 양도 달라지고 준비 과정도 달라진다. 보안구역이었음에도 배우기 위해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방법으로 운송 과정을 파악했다는 게 아시아나항공 측의 귀띔이다.
현재 국내에서 위탁 생산 중인 백신은 스푸트니크V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있다. 정부는 한때 스푸트니크V 도입을 검토했지만 러시아 측이 구체적인 임상 자료를 제공하지 않아 도입 추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백신을 들여와도 주요 인프라가 없으면 적시 적소에 공급이 안 된다. 항공사, 육상 물류사, 병원 등이 각각 백신 특성에 맞는 보관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