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버티면서 백신으로 공세 전환하는 작전 文 머릿속에 그런 구도 없었다 백신개발 강조하다 백신확보 늦어 코로나 終戰 지연은 경제 치명타
송평인 논설위원
국가가 억압적일수록 코로나에 잘 대응한다는 법칙에서 K방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감염병예방관리법’은 메르스 사태 이후인 2015년 개정 때 방역독재의 법으로 바뀌었다. 동선(動線)추적권이 도입됐다. 미국과 서유럽이 갖지 못한 무기를 가졌으니 우리가 더 잘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못했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동선추적권만 놓고 방역독재라고 경솔히 말하는 건 아니다. 방역 조사 때 거짓말을 하면 처벌하는 조항도 함께 도입됐다. 범죄자도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는데 범죄자도 아닌 감염 환자나 감염 의심자가 거짓말을 했다고 처벌받게 됐다.
행정명령으로 손쉽게 집회를 금지하는 조항도 2015년 신설됐는데 이로 인해 집회·시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권도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대만은 방역 실적이 우리보다 훨씬 좋은 나라다. 그런 대만에서조차 지난달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에 반대해 5만 명이 모인 집회가 열렸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재인산성을 쌓아 쥐 한 마리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학교 문을 닫지 않는 한 교회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문재인 정권은 교회 문을 카페 문 닫듯이 닫았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미국과 서유럽에서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영업점에 들어갈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거부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리를 걸을 때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가 과태료를 물까 걱정해야 한다. 중국에서 식당에 들어갈 때 QR코드를 찍는다고 사생활 침해 운운하던 보도는 우리가 QR코드를 사용하자 싹 사라졌다.
사실 자세히 알면 자랑할 만한 비결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해서라도 확진자와 사망자를 줄여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 하루 확진자가 1000명대라고 아우성이지만 하루 사망자가 수백 명인 비슷한 인구의 나라도 있다. 다만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방식으로는 확진자가 증가하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증가하는 추세를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더 누르면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겠지만 중국처럼 계속 누를 수 없는 이상 다시 풀 수밖에 없고 그러면 전보다 더 튀어 오른다. 지금 돌아보면 확진자가 100명을 넘었다고 야단일 때가 낯설게 느껴진다. 확진자가 수천 명이 되면 1000명을 넘었다고 야단인 지금이 또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코로나와의 싸움은 아무리 잘 싸워도 인간이 조금씩 후퇴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외신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유했다. 미국과 서유럽은 후퇴를 거듭하다 드디어 공세로 전환하기 위한 무기를 개발해 코로나와의 싸움에 나섰다. 우리만 거리 두기나 마스크 착용 같은 육탄전으로 싸우면서 잘 싸웠다고 자아도취에 빠졌다가 낭패에 직면했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다’ ‘실무자는 잘했으나 지도자가 못했다’는 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