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입시비리 등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한 이후 정치권의 공격을 받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동아일보DB
배석준 사회부 기자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예전에 판사를 벌할 때 가죽을 벗겼다”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정치권도 재판부 공격에 가세했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개혁에 집중하느라 사법개혁을 못 했다”는 판사 출신 이탄희 의원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오늘 진짜 뼈저리게 실감한다”고 썼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도 “사법개혁의 시작은 판사 탄핵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판결에 대한 평가는 누구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판사를 겨냥해 모욕과 위협을 가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해악으로 돌아온다. 법치주의는 시류에 구애받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사법적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법원이 정치권과 여론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자칫 국민들을 ‘여론의 법정’에 세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광복절 광화문 집회를 허용한 서울행정법원 박형순 부장판사에 대해선 해임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41만 명이 동의했고 여권을 중심으로 ‘박형순 금지법’까지 나왔다. 당시 법원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지만 김 대법원장은 그 다음 달 11일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 ‘사법부 독립의 가치가 소중하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영국의 톰 빙엄 전 대법관은 자신의 저서 ‘법의 지배’에서 “현대의 민주정부라면 사법적 판단을 수행하는 자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에는 영국이 2005년 헌정개혁법에 “사법부 수장은 사법부의 지속적 독립을 수호하여야 한다”고 규정했고, 사법부 수장은 법관 독립 수호 서약까지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취임사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이 그때의 약속을 실천에 옮겨야 할 때가 다가오는 듯하다.
배석준 사회부 기자 eul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