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생애 전반 영향 미치는 집값
수요자 속마음 읽는 정책 필요하다

박중현 논설위원
좁은 공간에 갇힌 동물들이 스트레스가 높아져 서로 공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인의 1인당 주거면적은 서구 선진국은 물론이고 일본에 비해서도 좁은 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가정 격리’ 스트레스도 더 높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방문해 “부부와 어린아이 같은 경우엔 2명도 가능하겠다”고 한 공공임대아파트 넓이는 44m²(전용면적 기준)로 주거기본법 4인 가족 최저주거기준 43m²가 넘지만 2011년 만든 이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계속돼 왔다. 좁은 공간과 스트레스가 문제라면 한국은 이혼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아야 한다.
집값 급등도 이혼을 부추기는 동인이다. 최석준 서울시립대 교수는 3년 전 ‘전세 및 매매 가격 변동이 이혼율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냈다. 1997∼2014년 주택 실거래가와 이혼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이 논문의 결론은 ‘한국인은 집값이 오를 때 이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집값이 상승하면 이혼해 나눠 가질 재산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값이 떨어지면 자기 몫이 줄어 이혼을 늦추거나 보류하게 된다. 자산의 76%를 부동산, 특히 집으로 갖고 있는 한국인의 특성이다. “전처와 살던 강남 아파트 값이 20억 원을 넘은 뒤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지인의 얘기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2년 연속 증가하던 이혼 건수가 올해 줄어든 이유가 ‘전세대란’ 탓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집값 상승기엔 ‘전세가율(집값 대비 전세가 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집값과 전세가율이 동시에 높아지는 특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임대차 2법 등의 영향으로 전세 매물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12월 수도권 전세가율은 67.1%로 치솟았고, 전셋값이 집값을 뛰어넘은 곳까지 나왔다. 집값이 올랐어도 이혼하면서 둘로 쪼개면 비슷한 수준의 전셋집을 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혼 결정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집은 이렇게 한국인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과 긴밀히 얽혀 있다. 청년들이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일자리와 집 문제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란 구호만으로 국민의 생활 방식이 금세 바뀌진 않는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년 설 연휴 전 내놓겠다는 현 정부 25번째 부동산대책은 이런 복잡한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을까.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