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혈액검사 키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다른 중증 질환의 진단 및 치료가 늦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뇌중풍(뇌졸중) 진단을 위해 시행되는 뇌영상 검사 수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예년에 비해 39% 급감했다. 미국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인한 입원이 48% 감소했다. 그 대신 병원 밖에서 심정지 빈도가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로 인해 숨겨진 질환들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달 첫 주 질병관리청 주간통계에 따르면 올해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신규 감염 신고 건수가 지난해 대비 20.7% 감소했다. 2018년과 비교해도 18% 감소했다.
최근 국내에서 폐암과 결핵도 비슷한 양상이다. 현재 국내에서 암 사망률 1위인 폐암은 늦게 발견되면 5년 생존율이 10% 미만으로 급격하게 떨어진다. 관련 학회에 따르면 2017∼2019년 2∼6월에 비해 올해 같은 기간 폐암환자의 호흡기내과 방문자 수가 16% 감소했다. 결국 늦게 발견된 탓에 말기 폐암환자 수가 더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핵도 같은 시기 20% 이상 환자 진단 건수가 줄었다. 결핵은 세계적으로 연간 약 1000만 명이 발생하고 300만 명은 진단되지 못한 상태로 방치돼 매년 120만 명이 사망한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결핵 팬데믹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도 생명을 위협하는 중요 질환인 대동맥판막협착증도 코로나19로 인해 치료 혜택을 못 받고 해를 넘기는 질환이 됐다. 이 질환은 대동맥판막이 좁아지고 심장에 손상이 발생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보통 고령에 의한 판막의 석회화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환자 6명 중 5명은 75세 이상 노인이다. 고령화 여파로 매년 환자 수가 20%씩 늘고 있고, 치료하지 않으면 환자 2명 중 1명은 진단 후 2년 내 사망할 정도로 위험하다.
대동맥판막협착증 치료로는 가슴을 여는 개흉 수술과 최소 침습 방법으로 인공판막을 삽입하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TAVI·타비)이 있다. TAVI의 증명된 안전성과 효과 때문에 이미 세계 주요국에서는 모든 연령층의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보험급여 또한 이뤄지고 있다. 이 치료법은 도입된 지 15년이 넘었다. 세계적으로 19만 건 이상의 시술이 시행됐고 관련 논문만 8000개가 넘는다.
정부 입장에서 코로나19 대응이 가장 시급한 과제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다른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관심과 경계가 느슨해지진 않았으면 한다. 현 시점에선 어려운 주문일 수 있지만, 코로나19 이전부터 인류의 생명을 위협해 온 질병에 대한 대응에도 빠른 의사 결정과 조치를 기대한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