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나눔]식자재 유통기업 ‘청밀’ 양창국 대표

21일 식자재 유통 전문 사회적기업 청밀의 양창국 대표가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안의 한 식품가게에서 진열된 농산물을 둘러보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식자재 유통 기업인 청밀을 설립해 장애인 고용에 나선 양창국 대표(52)를 만났다. 그는 “회사명인 청밀은 푸른 보리가 가득한 밭에 바람이 부는 모습을 떠올리며 지었다”고 설명했다. 넘실거리는 초록색 물결처럼, 선한 일들이 사회에 퍼져나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 장애인과의 만남에 사회적기업 전환
대기업 식품 관련 계열사에서 오래 일했던 양 대표는 2007년 창업을 결심했다. 처음엔 개인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식품공장을 설립해 운영하던 양 대표는 업무차 직업재활센터 한 곳을 방문했다가 사업의 ‘터닝 포인트(전환점)’를 만났다.그곳에는 자폐,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취약계층이다. 센터 측에선 양 대표에게 “이들을 위해 식품공장에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양 대표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 2008년 기존에 있던 회사를 사회적기업으로 전환한 것이 청밀의 시작이 됐다.
처음엔 장애인들을 고용해 식품 전처리를 주로 맡겼다. 식품 전처리는 농산물을 손질한 뒤 소분하거나 포장하는 일이다. 양 대표는 “인지능력은 충분하지만 힘이 부족한 65세 이상 어르신과 체력은 좋지만 인지능력이 부족한 장애인 직원을 각각 잘할 수 있는 업무에 나눠 배치하니 효율이 올랐다”고 말했다.
○ 내 손으로 돈을 버는 기쁨
많은 이들이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여기지만 장애인들이 가진 자립 욕구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청밀에는 그렇게 자립을 꿈꾸는 여러 장애인들이 찾아온다. 그들 중엔 10년 가까이 근무한 이도 있다.
양 대표는 “처음엔 위축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이들이 청밀에서 함께 일하면서 자신감을 되찾는 모습을 본다”며 “장애 직원 부모님들이 ‘내 자식이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성실히 다니길 바란다’고 하실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이 길든 짧든 집 안에서 나와 일하고 활동할 때 장애인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는 걸 가족들이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이다.
○ 사회적기업도 진화해야 한다
청밀의 사업은 △식자재 유통 △농산물 전처리 △공공기관 유통 △CSR스토어 등 네 가지로 나뉜다. 믿을 수 있는 친환경 먹거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관공서와 복지시설, 어린이집 등 약 150곳에 납품하고 있다. 또 소비자가 조리하기 편하도록 농산물을 세척하고 다듬어 포장하는 작업인 전처리로 매달 450t에 이르는 농산물을 가공한다. 양 대표는 한때 ‘우리는 착한 일을 하는 회사니까 (시장이) 당연히 우리 제품을 구매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2014년 한 고객으로부터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재구매하기 어렵다”는 따끔한 충고를 받고 난 뒤 1년 동안 모든 공정 프로세스를 개선했다. 단순히 식품만 납품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고객이 요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납품하는 방식으로 회사의 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청밀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위기를 겪기도 했다. 식품을 공급받는 여러 기관이 코로나19로 문을 닫거나 급식을 중단하면서 납품하는 물량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식자재 유통이 전문영역인 기업으로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청밀은 위기 속에서 ‘코로나 키트’를 생산하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마스크와 손 세정제, 물티슈 등 위생용품을 하나로 모은 코로나 키트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수요가 늘었다는 점에 착안해 빠르게 관련 제품을 만들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