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카버의 한국 블로그]

입력 | 2021-01-01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아침에 모두 기분 좋게 떡국을 먹었을 새해 첫날 2020년의 기억을 소환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연말 파티와 카운트다운 행사들은 모두 취소되거나 언택트로 했을 것이고 새해맞이 일출 행사가 벌어지는 관광지에는 출입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클럽이나 술집도 모두 일찍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라 새해라는 느낌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어제보다 한 살 더 먹었고, 내 아들과 같은 나이인 2002년생들은 이제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져 드물게 2021년이 반가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20대에서 30대로,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사람들은 오늘 아침 세수하면서 흰머리나 잔주름이 더 생기지는 않았는지 확인하지 않을까 싶다.

흰머리와 주름이 조금 늘었더라도 우리 상상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니 신경 쓰지 말자. 어쨌거나 우리는 2021년 첫날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세상을 떠나 사랑하는 가족과 작별한 이들은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평균 118명이다. 반면 2020년의 고통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새해 첫날 빛을 보는 신생아도 179명이니, 삶의 순환은 계속된다.

살아남은 우리는 오늘이 어제와 별 차이가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달력이 바뀌었다는 것 하나 정도일 듯하다. 그러나 일상에서 느낄 정도는 아니라도 심리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 새해이기 때문에 지난해 일을 다 잊고 희망을 갖게 된다. 새해 첫날은 막연하게나마 우리 모두 정상적이었던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날이다. 아직까지는 큰 낙관을 하기에 이르겠지만 모두가 백신 출시로 고난 끝에 낙이 올 것이라 바라고 있다.

나는 여느 새해 첫날처럼 역시 새해 결심을 세웠다. ‘웃픈’ 이야기지만 코로나 시대라서 우리가 흔히 하는 새해 결심들을 지키기가 조금 더 수월해지긴 했다. 요새는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목표가 아니라면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겠다든지 주량을 줄이겠다든지, 저축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결심 등은 잘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신년계획 이외의 주요 중장기 계획은 포스트코로나 시대까지 보류하기로 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우리의 생활이 정상화되는 첫날 힘든 고비를 넘기고 참아낸 나 자신에게 상을 주는 의미로 친구와 신나게 밤새워 노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새로 출발하는 것처럼 포스트코로나 결심도 세울 것이다. 그동안 죽어있던 삶의 의욕을 되찾을 것이며 마스크를 끼지 않고 거리를 걷는 것 같은 사소한 일들도 더 이상 당연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시기라도 개인적 자유를 포기하고 일상을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다시 악수, 어깨동무, 뽀뽀까지 자유롭게 하고 싶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도 보고 싶고, 운동을 하고, 클럽 가서 춤을 추고, 축구장 가서 응원가를 외치고 싶다. 그럴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믿고, 그날이 오면 두 번 다시 ‘귀찮아서 무언가를 안 하겠다’는 태도는 버릴 것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 2020년, 새해 분위기도 느끼기 어려운 2021년,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새해의 묘미는 바로 미래의 희망이다. 시인 T S 엘리엇은 ‘리틀 기딩’에서 말했다. “우리가 시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종 마지막이며 끝맺음을 한다는 것은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시작하는 시점이다.”

오늘이 어제라는 역사로 바뀌기 전까지 내일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 갇혀 있다고 느끼더라도 코로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추운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면 따뜻한 봄엔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 하루가 어제 하루보단 그 봄기운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뜻이니 모두 느긋하게 반드시 올 따뜻한 봄날을 맞이할 준비를 건강하게 하길 기원해 본다.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