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재판부는 사건 당시 B양 등 3명 침대에서 자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B양을 성폭행하기에는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성폭행 사건 현장으로 지목된 해당 침대(독자제공)2020.12.31/뉴스1
“난 절대 성폭행하지 않았다.”
10대 아동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A씨(34)는 수사 단계에서부터 줄곧 무죄를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말을 믿어준 이는 가족과 친구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1심 재판부가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을 때도 가족과 친구들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A씨는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아 불안하다”면서도 “나를 믿어줬던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징역 8년과 무죄, 지옥과 천당을 오간 A씨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선배 부탁으로 받아준 가족…1달간의 삶
A씨는 지난 2017년 12월, 동네에 사는 한 선배의 부탁을 받았다. “잠시 동안 여자친구와 둘이 함께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A씨는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와서야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 거절을 하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집 주인인 A씨가 큰 방을 쓰고 작은방을 B양의 가족들이 쓰기로 합의하는 선에서 동거는 시작됐다.
B양 등 자녀들은 비좁은 작은 방보다 넓고 침대가 있는 큰 방을 좋아했다. 이 때문에 B양 등은 A씨가 쓰고 있는 큰 방을 자주 드나들었다.
심지어 B양은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고, 큰 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잠을 자기도 했다.
하지만 동네 선배와 B양의 어머니는 다퉜고 2018년 1월 어느날 모두 집에서 나갔다.
2018년 11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아동보호기관에 입소한 B양은 상담 과정에서 A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B양이 법원 등에서 한 진술에 따르면 2018년 1월 어느 날 밤에 B양과 B양의 언니와 동생, C군 등 B양의 친구 2명 등 총 5명이 A씨의 방에서 놀다가 잠이 들었다. C군과 B양의 동생은 침대 바닥에서 나머지 3명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이날 A씨는 직장 회식으로 늦은 시간에 들어왔다고 했다.
B양은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A씨가 침대에서 자고 있던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B양은 A씨의 어깨를 손으로 밀고 빠져나왔고 A씨는 술에 취해 그대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B양은 이 같은 사실을 가족이나 경찰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B양으로부터 이 같은 말을 들은 아동보호기관 상담원은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자의 진술 뒷받침하는 범행 목격자 등장
수사단계에서 A씨는 “피해자를 성폭행한 적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A씨는 구속됐고 아동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의 친구와 동료들은 “A씨의 평소 행실에 비춰, 아동을 성폭행할 사람이 아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피해자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친구 C군의 진술 등으로 A씨는 아동 성폭행범이 됐다.
C군은 법정에서 “피고인이 술에 많이 취한 상태로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바지를 벗은 채 피해자 몸 위로 가는 것을 보았다”며 “5~10분뒤 피해자가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내려왔다”고 진술했다.
C군의 해당 진술은 1심 재판부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심 재판부는 Δ피해자가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 Δ사건 당시 같이 있던 증인이 피해자의 진술을 뒷받침 하는 점 Δ피해자가 거짓으로 피고인의 범행을 꾸밀 동기를 찾기 어려운 점 등을 근거로 A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어린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해 간음한 점, 피해자가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점, 앞으로도 그러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 점 등에 비춰 그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핵심 증인 진술번복, 징역 8년에서 ‘무죄’…구속기간 1년 6개월
1심의 징역 8년 선고에도 불구하고 A씨는 여전히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났다.
항소심 재판부인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성주)는 유죄를 판결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증거들이 A씨의 유죄를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2심에서 C군은 “A씨는 들어온 뒤 밖으로 나갔다가 왔고 침대 위로 올라간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1심 진술을 뒤집은 것이다. 게다가 C군이 B양의 어머니로부터 A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달라는 부탁들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을 신빙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증거 조사와 피해자를 포함해 증인을 불러 면밀히 심리한 결과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할 정도로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피해자의 진술과 여러 증인들의 진술이 배치되며, 피해자가 지목한 침대에서 함께 자고 있던 친구와 언니를 깨우지 않고 피고인이 범행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어 항소심 재판부는 “범행 시기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다”며 “이러한 여러 사정을 볼 때 피해자의 진술이 피고인의 유죄를 확증할 수 있는 신빙성을 갖추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항소했다.
(전북=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