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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그리는 마음속 색동[간호섭의 패션 談談]〈48〉

입력 | 2021-01-02 03:00:00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 참 파란만장했었죠. 그래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의 승인과 함께 접종이 시작되고, 치료제 또한 개발 중이라는 소식들이 새해를 맞는 시점에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고, 변변한 치료제 또한 없었던 시절에는 어땠을까요? 무언가 행복을 바라는 길상(吉祥)과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辟邪)를 기원함으로써 희망의 끈을 부여잡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그 상징과 방식은 다르더라도 늘 내 몸의 일부처럼 입고 있는 의복에 길상과 벽사의 염원을 담아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의복의 색상입니다. 이는 자라온 주변의 자연환경, 사회적 관습 그리고 종교 등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색상에서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은 같지만, 그 상징성은 서로 다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음양오행설에서 기원한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다섯 가지 기본색인 오방색(五方色)을 의복에 사용하여 길상과 벽사를 기원했습니다. 특히 한복 저고리와 치마의 다양한 색상 조합과 더불어 깃과 고름의 색상에 이르기까지 세상 만물의 이치를 의복에 녹여냈습니다. 세상 만물이 음양(달과 해)과 목(나무·청색), 화(불·적색), 토(흙·황색), 금(쇠·백색), 수(물·흑색) 다섯 가지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가 타면 불이 살아나고, 불이 나면 흙이 생기며, 흙이 뭉쳐 쇠가 되고, 쇠에서 물이 생기는 것을 상생이라 보았습니다. 반면 쇠가 나무를 베고, 나무는 흙을 먹으며, 흙은 물을 가두고, 물은 불을 끄며, 불은 쇠를 녹여 이를 상극이라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의복 색상의 조합에 있어서도 상생의 색은 선호하고 상극의 색은 피하기도 했죠. 실제로 상극인 빨간색 저고리와 검정 치마, 흰색 저고리와 파란색 치마는 현대의 미적인 관점에서도 아름다운 조합이 아니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중에서도 상생의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색동의 조합은 길상과 벽사의 대표적인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여러 색의 천을 하나하나 이어 만든 정성과 남은 천을 재활용해 새로운 옷 한 벌을 뚝딱 만들어내는 재주는 지금으로 치면 슬로 패션과 업사이클 패션의 원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한 가지는 오방색 중 하나인 검은색은 색동에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방색 조합인 색동이라고는 하나 부정적인 의미의 검은색만큼은 제외하였죠. 희망을 뜻하는 무지개에도 검은색은 없듯이 말입니다. 색동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 다른 색들이 조화를 이루는 상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가인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가 1930년대 경제 대공황으로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듯, 2021년 새해에는 우리 마음속에도 색동이 화사하게 피기를 바랍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