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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의료진끼리 “내가 먼저 접종” 티격태격… 기업들 우선권 로비도[글로벌 포커스]

입력 | 2021-01-02 03:00:00

각국 코로나백신 접종 시작 … 순서 놓고 갈등




지난해 12월 30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히브리재활병원의 의사, 간호사 등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많은 나라들이 의료진과 요양시설 거주자를 최우선 접종 대상으로 정했지만 워낙 초기 공급 물량이 적어 각국에서 누가 백신을 먼저 맞아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백신 관련 각종 사건 사고 또한 끊이지 않아 미 보건당국은 당초 목표했던 2020년 내 2000만 명 접종을 달성하지 못했다. 보스턴=AP 뉴시스

지난해 12월 8일 영국이 세계 최초로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 등 각국이 접종을 시작하고 모더나 등 다른 제약사의 백신을 승인하면서 코로나19 종식의 희망이 피어나고 있다.

많은 나라들은 바이러스 노출 위험이 높은 보건의료 종사자와 바이러스 치명률이 높은 요양시설 거주자를 최우선 접종 대상으로 정했다. 하지만 초기 백신 공급 물량이 극히 부족한 탓에 접종 대상을 늘릴수록 ‘누가 백신을 먼저 맞아야 하는가’를 둘러싼 갈등도 같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최우선 접종 대상인 의료진 내부에서조차 백신 접종 순위를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현재 대다수 뉴욕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접종 순위 논란이 조만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4단계 접종하는 미국

미국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크게 4단계에 걸친 접종 계획을 세웠다. 최우선 순위는 보건의료 종사자 2100만 명, 요양시설 거주자 300만 명 등 총 2400만 명. CNN에 따르면 이들에 대한 접종은 올해 2월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2순위는 소방, 구조요원, 교사 등 6개 직군의 필수 인력 3000만 명, 75세 이상 고령자 1900만 명 등 4900만 명이다.

3순위는 대중교통, 요식업, 건설업 등 12개 직군의 필수 인력(2000만 명), 65∼74세(2800만 명), 16∼64세 중 고위험군(8100만 명) 등 총 1억2900만 명이다. 4순위는 이에 포함되지 않은 16세 이상 모든 사람(8600만 명)이다. 3순위와 4순위는 빨라야 각각 4월, 5월부터 접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CNN은 예측했다.

보건의료 종사자, 요양시설 거주자를 최우선으로 접종하는 데에는 전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접종 순위는 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CDC가 우선순위 지침을 정하긴 했지만 이를 집행하는 최종 재량권은 각 주에 있기 때문이다. 개별 주들은 자체 자료를 바탕으로 확산 방지에 더 효과적인 접종 전략을 택하겠다는 입장이다.

북부 몬태나주는 2순위 접종 대상에 원주민을 포함시켰다. 약 107만 명의 인구 중 원주민 비율은 7%지만 주내 확진자의 13%를 차지한다는 이유에서다. 하버드대 보건대 역시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의 코로나19 피해가 컸다는 점을 근거로 이들에게 접종 우선권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 우선순위 확보 경쟁 치열

누가 먼저 백신을 맞느냐를 둘러싼 갈등은 최우선 접종 대상인 의료진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NYT에 따르면 미국의 화이자 백신 접종이 시작된 뒤 뉴욕 모건스탠리 아동병원에는 ‘접종 장소인 9층에 슬쩍 줄을 서면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 재택근무를 하던 일부 부서 직원이 먼저 백신을 접종받았다. 그러자 정작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면서도 백신을 접종받지 못한 현장 의료진이 분개해 병원장이 사과 메일을 보냈다.

뉴욕 마운트시나이 병원에서는 마취과 의사들이 “우리도 코로나19 중환자 치료를 담당하는데 왜 다른 의사보다 접종을 늦게 받느냐”며 병원 측에 항의했다. 일부 의료진은 소셜미디어에 접종 인증샷을 올린 동료를 보며 ‘저 사람이 나보다 먼저 백신을 맞을 자격이 있는가. 내 순위는 왜 밀려야 하는가’란 허탈감을 느껴야 했다.

지난해 초 뉴욕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한 후 의료진 사이에 형성됐던 동지애와 연대감이 사라지고 각자도생 기류가 만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 한 병원의 치료사는 NYT에 “동료와의 연대로 힘든 전염병 대유행(팬데믹) 기간을 버텨 왔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백신이 도착하자 오히려 달라졌다”며 경쟁과 질시가 난무한다고 한탄했다.

다른 업종 간 대립 또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각종 이익단체들은 대부분의 주가 2순위 우선접종에 포함시킨 교사를 두고 “방학 중인 교사가 왜 우선순위를 가져야 하는가. 설사 개학을 해도 이미 대부분의 수업이 원격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우리가 훨씬 많은 사람을 상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사 노조는 “공립학교 정상화야말로 팬데믹 시대의 종식을 의미한다”며 맞서고 있다.

뉴욕주에서는 호텔 노조, 대중교통 노조는 물론이고 승차공유 플랫폼 우버의 최고경영자까지 “2차 접종 우선권을 달라”는 서신을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에게 앞다퉈 보냈다. 이익집단들의 로비 경쟁이 치열해지자 쿠오모 주지사는 “편의를 봐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의료진 배우자와 죄수가 고령자보다 우선?

남부 플로리다주 의료업체 헬스퍼스트에서는 지난해 성탄절 연휴 중 일부 의료 인력의 배우자가 백신을 접종받아 논란이 됐다. 이 와중에 의료진 배우자 자격으로 백신을 접종받고 이를 소셜미디어에 자랑한 전 시의회 의원도 있어 비판이 더 커졌다.

플로리다투데이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직원에게 ‘백신을 접종받을 때 배우자 접종도 가능하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냈고 일부 배우자가 백신을 맞았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 업체는 성명을 내고 “주에서 지난해 12월 21일 첫 백신 배급 분량을 최대한 빨리 배포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연휴 기간 빠른 접종을 위해 의료진 배우자에게도 접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플로리다주에서는 보건의료 인력 본인이 아닌 그 배우자가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도 해당 의료진 또한 격리해야 한다. 해당 업체는 이를 감안해 배우자까지 백신을 맞아야 의료 인력의 안정적 운용이 가능하다고도 주장했다.

반면 주내 한 요양시설에서 근무하는 밸러리 매클렁 씨는 “아직 우리 환자와 직원들도 접종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의료진 배우자가 접종을 받았다는 것은 요양시설 거주자에게는 모욕”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뉴욕 인근 뉴저지주에서도 당국이 일부 교정시설 의료진과 수감자에게 백신을 투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주민이 “죄를 짓고 수감 중인 재소자에게 일반인보다 먼저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뉴저지, 앨라배마 등 6개 주가 집합 시설에 거주해 감염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재소자를 일반인보다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재소자 우선 접종은 미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도 권고하지 않은 조치라 논란이 됐다. ACIP는 백신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사망자나 심각한 질환을 최대한 줄이고, 사회 기능을 유지하며, 이미 차별받는 이에게 추가적 질병 부담을 줄여주고, 모든 이가 건강과 복지를 누릴 기회를 늘리는 측면을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 백신 사기, 고의적 훼손, 접종 실수까지

접종을 미끼로 각종 개인 정보를 유출하거나 돈을 요구하는 등 백신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해 12월 21일 유의해야 할 백신 사기 유형을 공표했다. △접종비 혹은 예약금을 받고 백신을 우선 접종받게 해준다는 광고 △백신 접종 혹은 접종 예약자 등록을 위해 돈을 요구 △백신 접종 시 추가 의료 검진 진행 요구 △임상시험 참가 및 백신 접종 자격 확인을 위해 개인 및 의료정보를 요구하는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FBI는 사기 피해 예방을 위한 팁도 공유했다. 우선 정부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백신 접종에 대한 최신 정보는 주 보건부 공식 홈페이지를, 백신 긴급사용 승인에 대한 최신 정보는 식품의약국(FDA)의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것을 권고했다. 온라인 약국에 등장한 소위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또한 FDA의 정식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이므로 구매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또 백신 접종 전에는 1차 병원 의사와 상담해야 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진이 아닌 사람에게 개인 및 의료정보를 알려주지 말라고 조언했다. 특히 의료비 및 보험 영수증을 꼼꼼히 확인해 수상한 청구 내용이 있으면 보험사에 문의할 것을 주문했다. 백신은 미 정부가 세금으로 구매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병원이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

각종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북부 위스콘신주 경찰이 지난해 12월 31일 고의로 모더나 백신 57병(570회 분)을 저온 냉동고에서 꺼낸 지역 병원의 한 약사를 체포했다고 전했다. 해당 병원은 같은 달 26일 영하 20도에서 보관되어야 할 백신이 냉동고 밖에 방치된 사실을 발견했다. 단순 실수인 줄 알았으나 약사 본인이 “고의로 저지른 일”이라고 실토했다. 그의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수도 워싱턴 인근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는 지난해 12월 30일 주방위군 42명이 모더나 백신 대신 코로나19 항체 치료제인 리제네론을 맞는 사고가 발생했다. 주 정부 측은 “유통 과정의 실수로 보이며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사고 경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AP통신은 지난해 12월 14일 백신 접종을 시작한 미국이 당초 연내 2000만 명의 접종을 목표로 했지만 같은 달 30일까지 8분의 1 수준인 259만 명이 맞았다고 전했다. 인구 10만 명당 접종 인원은 49명으로 미국보다 접종을 늦게 시작한 이스라엘(608명), 바레인(263명)에 크게 못 미친다. 플로리다의 69세 노인은 밤새 주차장에서 무려 14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주사를 맞았다.


○ 접종자 특혜 및 접종 방식도 논란

일부 항공사와 식당은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만 고객으로 맞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개개인이 자신의 백신 접종 시기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소수 백신 접종자만 상대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차별’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요하네스 페히너 독일 사회민주당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29일 일간 디벨트에 “민간 기업에서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차별 규정은 사회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만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완벽한 면역력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일부 국가가 추진하는 백신 여권 및 통행증의 실효성에 의문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화이자 백신의 1차 접종을 마친 미국의 40대 남성 간호사는 8일 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30일 자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긴급 사용을 세계 최초로 승인하면서 백신 접종 방식을 바꿀 뜻을 밝혀 의료 전문가의 비판을 받고 있다. 백신은 통상 1회차 접종 후 3∼4주가 지나 2회차 접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1회차와 2회차 접종 사이의 간격을 12주로 늘리겠다”며 2회차 접종을 지연시키는 대신 최대한 더 많은 사람이 1회차 접종을 받게 하겠다고 밝혔다. 임상시험 결과 1회차 접종만으로도 상당 부분 면역 효과가 입증됐으며 더 많은 사람에게 부분적으로라도 바이러스 보호막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라는 이유에서다.

의료계는 코로나19 백신 자체가 유례없이 단기간에 개발됐고, 안전 및 효능에 관한 자료 역시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다소 무모한 일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영국의사협회(BMA)는 하루 뒤 성명을 내고 “이미 1차 접종을 한 환자에게 2차 투여를 미루는 정부의 결정은 고통스럽고 파괴적일 수 있다”고 반발했다. 화이자 역시 “최대한의 방역 효과를 내려면 2회 접종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