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한국 국적 얻었지만… ‘난민’ 엄마는 여전히 3개월 체류 신분 위기 대법원 작년 ‘사랑이법’ 적용해 미등록자 출산 아동 출생신고 허용 본국에서 정치 박해 받았던 엄마, 체류자격 못 받으면 단기비자만 가능 아이와 3개월마다 생이별할 처지
○ 출생 등록 불허됐던 ‘그림자 아이’
주원이는 2018년 9월 태어났을 때 출생 등록을 할 수 없는 ‘그림자 아이’였다. 2017년 본보 보도를 통해 알려진 ‘그림자 아이들’은 불법 체류자 등 미등록자의 자녀인 ‘미등록 이주 아동’을 뜻한다. 출생 기록이 없어 건강보험 혜택이나 학교에 갈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주원이는 한국인 아빠와 외국인 엄마가 있지만 둘 다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우선 엄마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여권 등 신분증서가 필요한데 본국에서 정치적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엄마는 여권이 취소된 상태다. 아빠라도 신고를 해보려 했지만 필수 서류인 혼인관계증명서 등이 없었다. 외국인은 여권 등 국적을 증명하는 서류 없이는 혼인신고가 안 되기 때문이다.
○ 아이는 양지로, 엄마는 아직 그림자에
판결 6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주원이 부모는 우여곡절 끝에 출생신고를 마쳤다. 이제 주원이는 예방접종과 건강보험, 아동수당 등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주원이네 가족은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엄마가 법무부에 신청한 난민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면 한국에서 합법적인 체류를 할 수 없어 주원이와 3개월마다 ‘정기적인 이별’을 해야 한다. 주원이는 그림자에서 양지로 나왔지만 엄마는 아직 그림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주원이 엄마는 본국에서 극심한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 경찰에 수차례 잡혀 들어가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2005년 다른 나라로 피신해 본국 정부의 탄압에 대한 실상을 알렸다. 이후 국내외를 오가며 살아온 엄마는 일본에서 인도적 체류 지위를 얻기는 했지만 아직 국내 체류 자격을 얻지 못했다. 국적이 없어 주원이 임신·출산 과정에서 발생한 병원 비용도 건강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주원이 엄마는 3개월 단기 방문비자로 한국에 머물다가 지난해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한 상태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과 난민 신청 적체 등의 여파로 아직 면접조차 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엄마의 본국에서 온 사람 중 유사한 사유로 법무부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례가 거의 없다. 주원이 엄마는 난민 인정을 못 받으면 주원이를 한국에 두고 3개월마다 해외로 나갔다가 재입국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입국 때마다 2주간의 자가 격리도 해야 한다.
전수연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유엔아동권리협약상 아동은 부모의 양육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주원이 엄마는 사실상의 무국적자로 ‘법률상 존재하지 않는 자’에 속해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난관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 가족관계등록법(사랑이법) ::
혼인관계가 아닌 남녀가 자녀를 낳은 뒤 어머니의 주민등록번호 등 신원 정보를 알 수 없는 경우 아버지가 자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했다(2015년 신설). 이전에는 아버지 혼자 자녀 출생신고를 하는 절차가 까다로워 입양을 보내는 등 가족관계등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