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과 불일치하면 구독 취소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달 17일 ‘콘텐츠 산업 2020년 결산과 2021년 전망 세미나’에서 올해 콘텐츠 업계 키워드 중 하나로 신조어 ‘가불구취’를 선정했다. 콘텐츠 이용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행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가치관에 어긋나는 콘텐츠는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는 뜻이다. 가치관은 물론 윤리나 취향과 어긋나는 콘텐츠 및 채널은 구독 취소라는 방식으로 가차 없이 쳐낸다. 이런 현상은 특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구독 취소는 콘텐츠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여기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주도한다. 사회적 차별, 정치적 올바름, 환경적 가치를 중요시여기는 이들이 ‘내가 보는 콘텐츠는 나를 표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콘텐츠에는 “불공정한 내용을 담고 있는 콘텐츠는 보지 않겠다”, “이 콘텐츠를 보면 나도 불공정한 사람”이라고 댓글을 달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구독 취소 운동을 이끈다.
방송사만큼 영향력이 커졌지만 아직 규제가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는 OTT 기업으로선 이용자들의 높아진 윤리적 잣대를 스스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OTT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Z세대가 OTT의 주 소비자인만큼 구독 취소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며 “구독 취소 운동이 커지면 정부가 심의 권한을 높이는 등 규제를 할 근거가 돼 이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근 유료 콘텐츠를 쉽게 구독 취소하도록 돕는 규정이 생기고 있는 것도 이같은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튜브는 지난해 8월 방송통신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아 프리미엄 서비스를 중도에 해지하면 남은 기간을 환불해주기로 했다. 넷플릭스도 금융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해지할 때 1개월 단위로만 환불을 해주던 현재 제도를 1일 단위로 바꿀 것으로 보인다.
빠르게 변화하는 콘텐츠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윤리성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미래정책팀장은 “구독을 한 이용자는 언제든 구독을 취소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에 이용자를 잡기 위한 보다 꼼꼼하고 깐깐한 콘텐츠를 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콘텐츠로 사회적 가치를 소비하는 흐름은 계속해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