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계산으로 ‘사면’ 꺼낸 여당 개혁과 국민은 정권 연장의 수단일 뿐 탐욕과 오만 前정권과 무엇이 다른가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두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는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광대놀음을 하며 민생을 외면하고 국민 위에 군림했던 부정한 정치를 몰아내려는 민심을 따른 상징이다. 그 기반 위에서 검찰개혁 같은 수십 년간 켜켜이 쌓인 적폐에 대한 청산이 역사적 정당성을 갖는다. 사면은 국민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정무적 판단을 해도 되는 사안이 아니다. 화해와 용서를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면 다음 정권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가며 천천히 추진해도 늦지 않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주장을 갑자기 할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촛불은 어느 날 갑자기 권력을 안겨 준 횡재였기 때문이거나 그들만이 적폐청산과 역사적 화해의 주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현 정권이 촛불의 정통성을 가졌다는 것도 자가 발전에 가깝다. 우리는 2016년 가을 촛불의 전개 과정에서 헌정 질서를 염려하며 적당히 발만 걸치고 있던 그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광장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탄핵이 현실이 되자 촛불의 계승자라는 칭호를 스스로 부여했다. 국민도 이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모르지 않았다.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그들 외에 대안이 없었을 뿐이다. 물론 기대도 있었다. 비이성과 몰상식이 지배했던 비정상을 최소한의 이성과 상식이 통하는 정상으로 돌려놓으면 족했다. 흰 와이셔츠 소매를 접고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는 모습이 연출이라도 이전의 불통과 전횡에서 벗어났다는 실감을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국민적 기대와 염원, 지지율 84%(2017년 6월 한국갤럽 조사)로 출발한 현 정권은 어디에 서 있나. 탐욕과 오만, 그리고 무능으로 이전 정권과 같은 길을 가고 있지는 않나.
두 전 대통령 사면을 두고 여권 내부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갈리는 모양이다. 어느 쪽도 신뢰하기 어렵다. 어차피 그들에게 국민이란 잘하면 표를 다시 줄지도 모르는 유권자 일부와 진영 논리를 충실하게 내면화한 소수를 의미한다. 나는 정권의 성공에 관심을 거둔 지 오래다. 다만 촛불을 계승했다는 세력의 오만과 무능으로, 진영의 이익과 개혁을 뒤섞어버린 탐욕으로, 진보 집권 20년이라는 그들의 소망과는 반대로, 국민은 향후 20년 동안 오지 않는 대안을 기다리며 그들 이외의 다른 쪽에 표를 주는 고통의 선택을 계속할까 두렵다.
현 정권이 조국, 윤미향, 광역단체장들의 범죄를 감싸고 K방역으로 잔치를 벌이는 동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서울동부구치소는 생지옥으로 변했고, 확진된 줄도 몰랐던 재소자 가족은 코로나19로 사망해 화장한다는 통보를 전화로 받았다. 정부가 묵인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얼어 죽었다. 노동자는 매일 떨어져 죽고 고(故) 김용균의 어머니는 차가운 길에서 단식 중인데 여당 의원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놓고 2년, 4년 유예를 말하며 생명을 협상의 대상으로 다룬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차별금지법은 금기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진보의 가치란 무엇이었을까? 다음은 개헌인가? 국민을 위한 개혁은 없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