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연휴 가뭄’ 신축년[횡설수설/이진영]

입력 | 2021-01-04 03:00:00


새해 달력을 받으면 습관적으로 ‘빨간 날’을 세어본다. 신축(辛丑)년 휴일은 주5일제 근무자 기준으로 113일. 2010년 112일 이후 가장 적다. 지난해보다 이틀 줄었다.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이 일요일이고, 한글날과 성탄절이 토요일이다. 설과 추석 연휴, 어린이날이 빨간 날과 겹칠 때 주는 대체공휴일도 없다. 3·1절과 부처님오신날이 평일인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연휴도 가뭄이다. 4일씩 쉬는 설과 추석 연휴를 빼면 신정 연휴와 3·1절 연휴가 전부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도 토요일이다. 5월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이 수요일이니 앞뒤로 ‘연차의 마술’을 쓴다면 9일간의 연휴를 만들 수 있다. 서울과 부산 시민들에겐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있지 않느냐고? 재·보궐선거일은 법정 휴일이 아니다. 선거일 오후 8시까지 투표하거나, 사전투표하거나, 고용주에게 투표 시간을 요구하면 된다.

▷임시 공휴일이 깜짝 지정되면 추가 연휴를 기대할 수 있다. 국가적인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혹은 내수 진작을 기대하며 정부가 지정하는 빨간 날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임시 휴일이 지정돼 최장 10일간의 황금연휴가 만들어졌다. 지난해는 월요일인 8월 17일이 임시 휴일이 돼 3일짜리 광복절 연휴가 생겼다. 문제는 연휴 끝에 코로나19가 확산된다는 사실. 정부는 ‘피로 해소와 내수 진작’을 기대했지만 광복절 하루 전날부터 확진자가 100명 넘게 나오면서 집단 감염만 부채질한 셈이 돼버렸다.

▷올해는 빨간 날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빨간 날은 관공서 휴일이지만 근로기준법이 바뀌어 지난해엔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가 덕을 봤고, 올해는 30인 이상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도 유급 휴일이 된다. 하지만 올해는 휴일 수에 민감해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여행도 못 가는데 연휴가 무슨 소용이냐”고 한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은 “어차피 백수라 날마다 휴일이다” “365일 일해도 좋으니 회사가 망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며 한숨 쉰다. 코로나 뒷바라지로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방역과 의료 인력은 연휴 끝에 환자가 쏟아질까 빨간 날이 두렵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매년 6월 이듬해 공휴일을 계산해 ‘월력요항’을 발표한다. 이에 따라 달력을 만들고, 사업 계획을 세우고, 휴가 일정을 짠다. 하지만 지난 한 해는 코로나 확진자 수와 거리 두기 단계에 맞춰 일상을 꾸려야 했다. 올해 코로나와 경제 전망도 불확실하다. 열심히 일하다 빨간 날 푹 쉬는 생활 리듬을 회복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