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영화 ‘패터슨’
버스기사 패터슨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 고요한 시간에 시를 쓴다. 극적인 사건 없이 잔잔히 진행되는 그의 일상만으로도 관객은 영화에 몰입한다.
연말연시를 맞아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독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원하는 청탁서가 날아왔다. 답장을 쓴다. “절망을 밀어낼 희망과 위로를 말할 자신이 없어 사양합니다. 너른 양해 바랍니다.” 희망이 없어도, 누구나 자기 삶의 제약과 한계를 안고 또 한 해를 살아가야 한다. 묵묵히 자신의 전장에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지상의 천국은 새해에도 오지 않을 것이므로, 자신의 사적인 평화는 자신이 지켜야 한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을 본다.
담백하고 잔잔한 일상을 다룬 영화 ‘패터슨’.
그러기에 패터슨은, 아침 6시 조금 넘어 일어나,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옷을 입고, 출근하고, 근무하고, 퇴근하고, 동네 바에 들러 한잔한다. 돌아와 집안일 하고, 씻고, 잠자리에 든다. 그 일상은 영화 내내 반복된다. 시중의 영화라고 하면, 대개 이러한 일상적 활동 끝에 발생하는 극적인 일이나 과잉된 감정을 다루기 마련이지만, ‘패터슨’은 일상의 반복 그 자체를 다룬다. 그 반복되는 일상은 어떤 절정으로도 시청자를 인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상은 조용히 진행되는 예식처럼 잔잔히 아름답기에, 시청자는 몰입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 일상에의 몰입감, 그것이 이 영화의 정체다.
‘패터슨’에 그나마 극적인 사건이 있다면, 반려견이 패터슨의 비밀 시 노트를 갈가리 찢어버렸다는 것이다. 바로 그날 밤 패터슨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일찍 깬 패터슨은 그래도 하루를 다시 시작한다. 평소에 시를 쓰던 벤치에 가서 망연히 앉아 있노라니, 누군가 다가와 빈 노트를 건넨다. 새 노트를 받아든 패터슨은 다시 쓰기 시작한다. 패터슨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이 쓰는 시란 결국 물 위의 낱말일 뿐이다.
나도 패터슨처럼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잠자리에 들기 전, 산책을 하고, 샤워를 한 뒤, 페이스북에 그날 밤에 들을 음악을 올리고, 그날 갈무리한 책과 영상을 보다 잠든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달걀을 삶는다. 타원형의 껍질 안에 액체가 곱게 담겨 있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오랫동안 해 온 일이기에, 나는 내가 원하는 정도로 달걀을 잘 익힐 수 있다. 올 한 해도 이 일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 오는 초조함도, 목표를 달성했기에 오는 허탈감도 없이,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사라질 내 삶의 시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