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산업1부 차장
방구석에서 ‘영국 왕실 여행’이 가능한 ‘더 크라운 시즌4’도 다이애나 왕세자빈 등장 이후 인기가 치솟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그렇게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우울한 현실 너머의 꿈을 찾게 만든다.
주식시장에서도 그랬다. 많은 투자자들은 현실 너머 미래의 희망에 걸었다. 대표 사례가 테슬라다. 지난 한 해 동안 주가가 무려 743% 급등했다. 테슬라의 지난해 말 기준 시가총액(약 727조 원)은 폭스바겐, 도요타, 닛산, 현대차,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혼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푸조 등 9개 완성차 기업을 합친 것보다 높다. 테슬라의 ‘현재 가치’가 이 정도일 리는 없다. 도요타가 지난해 상반기(1∼6월)에만 416만 대를 팔 때, 테슬라는 지난 한 해 50만 대 팔았다.
테슬라의 미래를 꿈꾸는 열정적 팬과, 숫자를 보는 분석가 사이의 시각차는 큰 편이다. 증권사 사이에서도 목표 주가가 천차만별이다. 테슬라의 지난해 말 기준 주가는 705달러. JP모건은 “극적으로 과대평가”됐다며 12개월 후 목표주가를 90달러로 제시했다. 골드만삭스는 780달러, RBC캐피털마켓은 339달러다. 실제론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해 또 다른 스타 기업은 애플이었다. 테슬라가 주가 상승률 세계 1위라면 애플은 시총 증가액 1위다. 1년 동안 무려 1조 달러(약 1086조 원) 늘었다. 1조 달러는 한국의 연간 무역 규모에 해당한다. 애플은 테슬라처럼 열정적인 팬을 거느리고 있을 뿐 아니라 10년 이상 모바일 세상을 지배하며 ‘믿고 보는 기업’으로 무한 신뢰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동학개미가 무한 신뢰를 보낸 삼성전자 주가가 급등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뽑은 ‘2020 시총 증가액 톱10’ 중 삼성전자는 애플, 아마존,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구글), 텐센트, TSMC, 페이스북, 엔비디아의 뒤를 이은 10위였다.
비대면 정보기술(IT) 기업의 성장과 풍부한 유동성을 감안하더라도 테슬라, 애플 같은 기업들의 주가는 놀랍다. 현실 경기와 너무 달라서다. 서울 명동, 뉴욕 타임스스퀘어 앞 상점들이 눈앞에서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미국에선 니만마커스 같은 대형 백화점이나 제이크루 같은 패션 대기업도 파산 신청을 했다. 코로나19 한 해 동안 많은 이들이 한 시대의 끝을 체감했고, 현실보다 미래의 희망에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해에도 어느 분야에서든 희망을 좇는 추세는 강해질 것이다. 현실의 결핍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욕망을 부르는 법이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