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우리 부모님 이혼했는데, 너희 부모님도 이혼했구나.’ ‘고졸 출신이라 서러웠는데 너도 그랬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큰 병에 걸린다면, 그가 아무리 나를 의지한다 해도, 그 병에 걸려 본 사람만큼 그의 아픔을 헤아릴 순 없을 것이다. 나에겐 가까운 성소수자 친구가 많지만, 정작 그들이 사회에서 차별당할 땐 나보다 다른 퀴어 친구들에게 제일 먼저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것이다. 나 역시 내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옮겨 다녔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생각하는 것만으로 두렵지만, 세상의 모든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 어떤 사람에게도 곁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람 앞에선 이런 말 하면 안 돼, 어차피 이해받지 못할 거야’라며 입을 닫게 하는 상황을 안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소외받는다는, 차별받는다는 느낌을 안 주지 않을까.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 많은 일들이 겹쳐서 그랬던 것 같다. 황인찬 시인의 ‘사랑을 위한 되풀이’라는 시집에서 “이 모든 일을 언젠가는 다 적어야겠다고, 그러나 사실로는 적지 않아야겠다고”라는 문장을 보았다. 무엇보다 동생의 일이 컸다.
올해를 정리하는 100가지 질문 중 하나에 이런 게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 )해진다.’ 친구는 ‘시간이 갈수록 못나진다’라고 했다. 엄살이겠지만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농담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훌륭해진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 슬픈 일이 발생할 확률이 크다. 그래서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