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문화부 기자
올해는 어떨까. 새해에 소개할 신간을 검토하다가 80년생의 시각에서 본 사회비평을 담은 ‘추월의 시대’란 책을 봤다. 친일 대 종북, 산업화 대 민주화 세대란 이분법만으론 읽을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다층적 변화를 80년생 관점에서 다시 점검했다는 소개가 눈길을 끌었다. “개발도상국 한국에서 자란 마지막 세대이자 선진 대한민국을 겪은 첫 세대”란 특수성을 바탕으로 배척과 분열 일변도인 현재 정치 지형에 비판을 가한 착안점이 흥미로웠다.
사실 80년생이 정치적 발화자로 등장하려는 조짐은 최근 들어 계속 있어 왔다. 강력한 기득권 정치집단이 된 운동권 세대를 작심 비판한 ‘386 세대유감’(2019년)도 80년생 공저자가 주축이었다. 특히 지난해 국민청원에 ‘시무7조’를 써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조은산, ‘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를 연재해 화제가 됐던 삼호어묵도 80년대생으로 알려졌다.
목동의 중산층 워킹맘으로 알려진 삼호어묵은 흙수저 유년기를 자주 언급한다. ‘노오력’이 꼰대의 상징이 된 시대지만, 성과주의의 순기능이 작동했던 사회를 그는 직접 체험하며 컸다. 열심히 살며 내 집 장만한 게 적폐가 되는 세상은 경험과 직관 모두에 반한다. 이들이 상식과 원칙의 기준에서 분노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그 반향이 컸다.
80년생의 복합적 정체성에서 파생된 분노가 생각보다 폭넓은 공감을 얻는 사소한 예가 한 가지 더 있다. 80년생 회사원 지인은 얼마 전부터 인터넷 뉴스에 일일이 댓글을 단다. 정치부터 부동산까지 열 뻗치는 뉴스가 너무 많아서란다. 댓글만 보면 육군 장성 출신 은퇴자 같은데 실제 그녀는 몇 년째 갖고 싶은 반클리프 목걸이 가격만 검색하는 소심한 워킹맘이다. 그 댓글 속에 살아 숨쉬는 그 준엄한 부캐(부캐릭터)는 라떼도 90년생도 다 이해가 가는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 80년생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재밌는 건, 이게 자주 포털의 베스트 댓글에 오른단 점이다.
‘튀어서 좋을 것 없다’는 베이비붐 부모 세대의 가르침대로 웬만하면 순응하고 살던 30대들을 자꾸 발화자로 깨우는 시대다. 여러모로 유감에 찬 발화자들인데, 갈채와 관심이 쏟아진다. 이쯤 되면 소개해도 좋지 않을까. 60년생 386세대와 그들의 자녀인 90년생 사이에서 생략됐던 이들. 80년생도 왔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