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박 이란軍에 나포]이란, 한국 원유대금 송금과정서 美가 자산 또 동결시킬까 의심… 외교1차관 방문 엿새 앞두고 강경파 앞세워 한국선박 볼모로… 백신비용보다 무리한 요구 할수도
○ 동결 자금으로 백신 구입 협상 중 “인질” 운운
AP통신에 따르면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5일(현지 시간) 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가 인질극이라는 관측을 부인하면서도 “이란 자금 70억 달러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고 했다. 이어 “누군가를 인질범으로 불러야 한다면 70억 달러가 넘는 우리 자금을 근거 없이 동결한 한국 정부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AP통신은 라비에이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동결된 자산과 연관성에 대해 가장 직설적으로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의 이란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에는 미국의 이란 제재에 따라 이란산 원유 수출대금 70억∼90억 달러(약 7조5600억∼9조7200억 원)가 동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에 동결된 이란 원유 수출대금 중 최대 규모다. 이 밖에 한국은행에도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맡긴 초과 지급 준비금이 3조 원 이상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두 계정의 자금을 합치면 국내 은행에 최소 10조 원이 넘는 이란 자금이 있는 셈이다.
이란의 요청을 받은 정부는 미국 재무부와 협의를 통해 특별 승인을 받은 뒤 이란 백신 구입 비용을 코백스 퍼실리티에 지급하려 했다. 하지만 정부가 승인 사실을 이란 측에 전했음에도 이란 정부는 송금 과정에서 달러화로 바꿔 미국 은행으로 자금이 들어가면 미국 정부의 동결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해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 외교부 차관 이란 방문 때 무리한 요구해올 수도
하지만 혁명수비대가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선박을 납치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한 정부 일각에서는 혁명수비대가 이란 주요 이권을 장악한 강경파로 한국이 원유 대금과 맞바꿔 이란에 제공하는 물품 액수가 너무 적다고 불만을 표시해 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에 이란이 코로나19 백신 구입 비용으로 활용하기로 한 액수는 1680만 도스(회) 접종 분량에 해당하는 2억4400만 달러(약 2650억 원)로 추정된다. 이란이 강경파를 내세워 이 기회에 이란 원유 수입 비중이 높아 이란과도 잘 지낼 수밖에 없는 한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지난해 동결 대금과 맞바꾸는 방식으로 이란에 인도적 물품을 제공해 왔다고 밝히면서 “이란 강경 보수파에서 한국이 동결 자금 규모에 비해 (이란에 제공하는 액수가) 아직도 조금이고 충분하지 않다는 불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최지선·김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