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술 거장 김창열 화백 1972년 파리서 첫 물방울 작품 실제 물 묻은 것처럼 묘사해 주목 퐁피두센터 등에서 작품 소장
김창열 화백은 6·25전쟁 당시 제주도에서 1년 6개월간 피란생활을 했다. 이때의 인연을 시작으로 자신의 작품 220여 점을 제주도에 기증했다. 2016년 9월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개관전 당시의 모습. 동아일보DB
1970년대 초 프랑스 파리 근교. 형편이 어려워 마구간에서 생활하던 한국인 작가는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려고 대야에 물을 받았다. 그때 옆에 뒤집어 둔 캔버스에 물방울이 튀었다. 뽀얀 캔버스에 알알이 뿌려진 물방울에 햇살이 비치자 그림이 됐다. 이날 이후 ‘물방울 화가’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온 김창열 화백이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 화백은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 처음 물방울이 등장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그의 작업은 하나의 물방울이 캔버스 위에 점처럼 놓여 있는 것부터 전면을 물방울이 메운 것까지 다양한 형태로 변해갔다. 1990년대부터는 천자문이 배경으로 놓인 물방울 작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일본의 미술평론가 주니치 쇼다는 “김창열이 알파벳이 아니라 한자를 선택한 것은 한자문화권에서는 단순한 조형적 요소를 넘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평했다.
실제 물이 묻은 것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된 물방울은 프랑스 화단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2004년 프랑스 국립 죄드폼 미술관에서 한국인 작가로는 드물게 화업 30년을 결산하는 회고전을 열었다. 또 파리 퐁피두센터와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턴현대미술관, 독일 보훔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고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파리 바뱅에 거주할 때는 한국에서 유학 온 작가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다. 권순철 화백은 “1980년대 파리로 이주했을 때 댁에 초대를 해주셨고, 한국 작가 전시가 열릴 때면 꼭 개막 한두 시간 전에 와서 찬찬히 작품을 보고 격려해 주셨다”며 “정이 많아 후배들을 많이 챙겨 주셨다”고 전했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6세 때 월남해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대학 은사인 김환기의 주선으로 1965년부터는 4년간 미국 뉴욕에 머물며 판화를 배웠다. 1969년에는 백남준의 도움으로 제7회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이를 계기로 파리에 정착했다. 유족으로 부인 마르틴 질롱 씨와 아들 김시몽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김오안 사진작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안암병원, 발인은 7일 오전 11시 50분. 02-923-4442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