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월말에 백신 접종을 시작하겠다고 밝히면서 누가 먼저 백신을 맞고 누가 늦게 맞을지 접종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 ‘발등의 불’이 됐다. 설득력 있는 기준 없이 정부가 백신 접종에 나선다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의 소지가 될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사진공동취재단/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제25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2월부터 의료진·고령자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정은경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2월 말부터 의료기관 종사자와 요양병원, 요양시설 등 집단시설에 거주하는 어르신부터 접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말 ‘코로나19 백신 확보 현황 및 예방접종 계획(안)’을 내놓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선 접종 권장대상에는 의료기관 종사자, 집단시설 생활자 및 종사자, 노인·성인 만성 질환자, 소아청소년 교육·보육시설 종사자 및 직원, 코로나19 1차 대응요원, 경찰·소방 공무원·군인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너무 막연한 기준이어서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기준이 제시돼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이달말까지 기준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사전논의가 충분치 않아 시간이 촉박한 실정이다.
한국의료윤리학회는 지난달 7일 ‘의료 자원 분배에 관한 윤리원칙 수립과 사회적 호소’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학회는 “원칙에 따른 백신 접종 우선 순위를 정하지 않은 채 백신이 공급되면 사회적 갈등과 의료적 비효율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접종이 이미 시작된 미국에서도 의료 인력에 최우선적으로 접종해야한다는 일반 원칙은 세웠지만 병원내 사무직, 청소 노동자, 카페테리아 직원도 다른 국민에 비해 우선적 접종 대상자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정한 기준 가운데 만성질환자가 포함돼 있는데 세분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2019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만성질환 진료 인원은 1880만명이었다. 고혈압 653만명, 관절염 502만명, 정신 및 행동장애 335만명, 신경계 질환 328만명, 당뇨병 322만 명, 간질환 196만 명 등이다.
한편 미국 암학회(AACR)는 최근 암환자, 특히 혈액암 환자를 가장 먼저 백신을 접종해야할 고위험군에 포함시켜야한다고 권고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