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징악 없어진 K막장 드라마 정치에서도 事必歸正 없어지면 어쩌나 사이코는 “진실은 우리가 만든다” 사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5일 자체 최고 시청률로 종영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과거의 공식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부동산 문제로 국민 분노가 들끓는 지금, 100층짜리 호화 아파트의 비극은 “모두 다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던 전 대통령정책실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반듯하고 선해 보이는 겉모습에 속지 말라는 새해 교훈도 짜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등장한 이 K막장 드라마는 인과응보가 없어 묘하게 시사적이다. 예전 막장극에선 악한도 결국 잘못을 뉘우치거나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어 손발이 오글거리는 감동을 주었다. 과거엔 정권 비리가 드러나면 대통령들이 국민 앞에 사과를 했던 것이다. 검찰이 대통령 무서워 대충 수사를 덮으면 야당에서 들고일어나 특별검사를 사실상 지명했고, 대통령의 인사권에서 자유로운 특검은 살아있는 권력을 추상같이 단죄했다. 검찰총장을 찍어내거나 헌법에도 없는 수사기구를 만들진 않았다는 얘기다.
드루킹 대선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은 문재인 정부 출생의 비밀일 수 있다. 이 사건의 김경수 경남지사는 작년 2심에서 대선 여론 조작 혐의가 유죄로 판단돼 징역 2년이 선고됐음에도 대법원 무죄 판결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의 원톱 최측근인 그로선 진실도 자신들이 만든다고 믿고 싶을지 모른다.
블루하우스가 윤석열 검찰총장 하나 때문에 ×물을 뒤집어쓸 수는 없다며 법무부 장관 추미애를 앞세워 벌인 일들은 모조리 실패했다. 건전한 상식으로, 법관의 양심으로 대한민국의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사법부 덕분이다. 그러나 추미애 못지않은 강성 친문 의원 박범계가 후임으로 내정돼 2020년 뺨치는 막장 혈투가 우려될 판이다.
K막장 드라마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 거듭되면서 충격의 강도가 갈수록 커지는 자극의 역치(閾値)가 발생한다. 문재인 정권 역시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 일으킴으로써 대통령비서실장이 멀쩡한 국민을 ‘살인자’라고 소리쳐도 놀라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상태가 돼버렸다.
그러나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내 집을 놓고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면 소 같은 국민도 못 참는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사이코패스나 다름없다. 부동산 안정을 목표로 24번이나 규제 정책을 내놓고도 성과가 안 났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방향을 바꿔야 옳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회견에서 “급격한 가격 상승이 원상회복될 때까지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며 일로매진을 강조하는 놀라운 모습이었다.
막장 드라마는 그나마 현실이 아니어서 즐기면 그만이다. 살아있는 국민을 놓고 벌이는 막장 정치는 국민 심성을, 나라 근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처럼 막장 미드를 연출했던 미국이 마침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선출해 정상(正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우리에게도 선거가 있다는 희망으로 2021년을 버틸 일이다. 마스크 단단히 끼고.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