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11축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북한은 이런 ICBM과 핵탄두를 자강도 만포에 숨긴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그런데 김정은이 최근 몇 년 사이 ‘최후의 병기창’인 핵탄두 저장고를 자강도 만포시에 비밀리에 만들었다는 정보가 얼마 전 입수됐다.
지금까지 북한 핵문제를 말할 때 평안북도 영변의 핵시설이 언론에 단골로 등장했지만 만포가 언급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평산군 청수리에 위치한 ‘남천화학단지’에서는 인근 광산에서 캔 우라늄 광석을 정제해 ‘옐로케이크’라고 불리는 1차 원료를 만든다. 이것을 영변에 싣고 가 원심분리기로 고농축시켜 핵무기 제조용 우라늄을 생산한다.
그런데 소식통에 따르면 몇 년 전부터 평산과 영변 단지의 운영은 사실상 중단됐다고 한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공장 중 하나가 있는 평산군 청수리는 과거엔 정전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날이 비일비재하기 시작했다. 이는 우라늄을 필요한 만큼 다 생산해 평산 우라늄정련공장은 자기 역할을 끝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위성사진으로 확인해 봐도 청수리엔 최근 정전에 대비해 태양광발전 패널을 단 집들이 크게 늘었다.
영변 핵 단지와 그에 포함된 인근 분강지구 역시 현재는 거의 가동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2018년 베트남 하노이 북-미 회담에서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이미 영변의 용도도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북한은 핵탄두 몇십 개만 보유하고 있어도 전략적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으며 영변 핵시설을 끊임없이 가동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왜 만포를 선택했을까. 만포는 압록강 옆 국경도시이다. 이곳 산 아래 깊숙한 곳에 저장고를 건설해 입구를 중국 쪽 산비탈로 빼면 타격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미사일을 쏘면 산이 막아서고, 중국 영공에 들어가지 않고선 공습도 어렵다. 특히 만포엔 아연광산이 많은데, 이는 이곳이 지질학적으로 단단하다는 뜻이다.
또 만포는 평양과 직통 철도로 연결돼 있다. 전쟁이 터지면 김정은은 빠르게 만포로 달아날 수 있지만, 공격자의 입장에선 제일 마지막에 함락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만포다. 이는 김정은의 처지에서 볼 때 최악의 경우 마지막까지 핵무기를 껴안고 흔들며 협박을 할 수 있는 최후의 지역이 만포라는 의미다.
물론 만포가 국경도시라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핵무기를 탈취해 갈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하지만 중국이 핵을 가진 북한을 방패로 끼고 있어야 할 이유가 더 크기 때문에 김정은은 그런 위험은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만포뿐만 아니라 백두산 아래에도 몇 개 더 숨겨놨을 수도 있지만, 유사시 그곳까지 갈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