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휠체어를 탄 채 승하차할 수 있는 저상버스. 동아일보DB
최예나 정책사회부 기자
유럽까지 다녀온 부부지만 한국에선 이웃한 지방자치단체로 이동하는 것도 힘들다. 아내 윤 씨는 서울 강남구의 한 광고회사에서 일한다. 집도 같은 강남구라 장애인 콜택시보다 저렴하고 자주 오는 저상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서울은 저상버스 보급률이 전체 버스의 53.9%에 달한다.
그런데 다음달 이사 갈 예정인 경기 하남시에서는 저상버스 이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남에서 운영 중인 저상버스는 총 14대. 보급률이 5.7%에 불과하다. 그나마 윤 씨가 이사 가는 동네로는 단 한 대의 저상버스도 지나가지 않는다.
결국 이들 부부는 하남시와 국토교통부에 “한 노선에 집중된 저상 버스를 분산 운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하남시의 답변은 “앞으로 저상버스로 설계된 전기버스 도입을 적극 지원할 것”이었다. 국토부는 일주일 넘게 답변이 없다.
2019년 기준으로 전국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26.5%다. 당초 올해까지 달성하기로 한 목표치(42.0%)에 한참 못 미친다. 보급률이 가장 낮은 충남은 9.3%에 그친다. 윤 씨처럼 자기가 사는 지역에 저상버스가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 장애인도 많다는 이야기다.
이 문제는 국가가 저상버스 보급 비율을 의무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금은 ‘저상버스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수 이상으로 운행하는 자에게 우선 운송사업 면허를 준다’는 권고 규정만 있다. 하지만 상당수 지자체는 운송사업자가 1명뿐이라 사실상 유명무실한 규정이 됐다. 장애인 단체 등에서는 “버스 노선별로 저상버스 운행 최소비율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유롭게 이동하는 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다. 게다가 저상버스는 장애인뿐 아니라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어린이, 고령자의 이동도 돕는다.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더라도 내 가족 혹은 노후의 내가 이용하는 것이다. 교통약자가 언제 어디로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저상버스를 노선별로 실효성 있게 도입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