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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정인이 없도록” 위탁가정 신청 늘었다

입력 | 2021-01-07 03:00:00

시민들 “경찰도 기관도 믿을수 없어”… 아동학대 안전망 확충에 직접 나서
전문가 “국내 보호쉼터 턱없이 부족… 피해아동 분리할 거처 마련 급선무”




“경찰도 기관도 믿을 수 없었어요. 나부터 나서야겠단 생각뿐이었습니다.”

전북 전주에 사는 김승희 씨(42·여)는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의 학대 사망 소식을 들은 뒤 지난해 11월 전북위탁가정지원센터에 위탁가정 신청서를 냈다. 김 씨는 6일 “학대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 맘 편히 기댈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다”며 “그게 정인이를 위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관련 교육을 이수한 뒤 가정방문 등을 거치며 위탁 준비 과정을 밟고 있다.

양부모의 학대로 세상을 떠난 정인이 사건 뒤 또 다른 정인이가 나오지 않도록 학대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위탁가정이 되려는 시민이 늘어나고 있다. 위탁가정이란 친부모의 학대나 사망, 수감 등을 이유로 아동이 보호받기 어려울 때 일정 기간 다른 가정에서 보호받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경남가정위탁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정인이의 죽음이 알려진 뒤 지금까지 38명이 위탁가정이 되고 싶다며 신청서를 제출했다. 2019년 같은 기간 9명밖에 신청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강원가정위탁지원센터 측은 “전년도 같은 기간 위탁가정 신청자는 1명뿐이었지만 올해는 9명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부산가정위탁지원센터도 4일 하루에만 홈페이지에 위탁가정 신청서가 2건이나 접수됐다. 센터 관계자는 “한 달에 2건 있어도 많다고 했는데 하루에 2건이 들어와 직원 모두가 놀랐다”고 했다. 해당 신청서를 냈던 주부 A 씨는 “정인이 사건을 통해 버려지는 아이들과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한 위탁가정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피해 아이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정인이 사건으로 향후 위탁가정 확보는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가 재발 방지 대책 가운데 하나로 가정학대 신고가 두 번 이상 접수되면 즉각 분리한다는 방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해당 아동들을 보호할 거처 마련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위탁가정 수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2019년 기준 보호 조치가 내려진 아동 4047명 가운데 위탁가정으로 간 아이들은 1003명(24.3%)에 그쳤다. 게다가 위탁가정은 2015년 1만705가구에서 2019년 8354가구로 갈수록 줄어왔다. 아동권리보장원 측은 “위탁가정 등 피해 아동을 분리할 곳이 마땅찮아 학대가 발생한 가정에 그대로 머물다 다시 피해를 입은 아동이 2018년에만 1775명이나 된다”고 설명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의 심형래 관장은 “가정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곧장 분리해야 하나 현재 위탁가정이 워낙 부족하다”며 “시민들의 참여가 아동들을 위한 안전망이 돼줄 수 있다”고 했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김태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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