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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꽁꽁, 증시만 활활 ‘데자뷔’… 2007년 유동성 장세와 닮은꼴

입력 | 2021-01-07 03:00:00

[코스피 3000시대]단기 과열에 여전한 ‘거품’ 우려
2000 찍고 1년만에 금융위기 맞아… 개미들 살때 기관-외국인은 팔아
개인 매수만으론 주가 견인 한계
‘빚투’도 20조 육박… 뇌관 될수도




처음 찍힌 ‘3,000’ 6일 코스피가 장중 사상 처음으로 3,000 선을 돌파하며 국내 증시의 새 역사를 썼다. 다만 사자 행렬을 이어간 개인투자자와 매도 공세를 이어간 외국인, 기관의 힘겨루기 끝에 0.75%(22.36포인트) 내린 2,968.21로 마감했다.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3,000이 적혀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6일 오전 코스피는 장 초반 개인투자자들이 2000억 원 넘게 사들이면서 3,027.16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오후 장 마감을 얼마 두지 않고 기관이 13조 원까지 순매도 규모를 늘리자 3,000 선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개인투자자들 홀로 3,000 선을 뚫기는 역부족이었다. 시장에선 사상 처음 종가 기준으로 3,000 선을 넘지 못한 데 대한 진한 아쉬움이 흘러나왔다.

이날 코스피가 장중 3,000 선을 찍으며 ‘삼천피’ 시대를 열었지만 개인투자자의 ‘외끌이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실물경제 침체 속에서 주가 단기 급등에 따른 거품(버블) 우려도 여전하다. 금융시장에 풀린 풍부한 유동성 덕분에 2007년 2,000 선을 돌파했다가 1년 뒤에 글로벌 금융위기로 추락한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

○ ‘2,000 선’ 찍고 추락한 13년 전 악몽 재연되나

코스피는 2007년 7월 25일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3’에서 ‘A2’로 한 단계 올리자 사상 처음 종가 기준 2,000 선을 돌파했다. 기업의 실적 개선과 풍부한 유동성이 2,000 선 돌파의 일등공신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하루 만에 2,000 선이 무너졌고, 1년 뒤엔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 10월 24일 938.75까지 추락했다.

올해도 3150조 원(지난해 10월 기준)을 웃도는 과잉 유동성이 증시를 밀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적극적으로 재정정책을 펴면서 시중에 풀린 돈들이 자산시장으로 쏠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 통화량 증가율 대비 지난해 코스피 상승률은 6.9배에 이른다. 반면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5배, 처음으로 30,000 고지를 밟은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 지수는 1.6배에 그쳤다. 한국 증시가 풀린 돈에 비해서도 더 많이 올랐다는 뜻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현 상황에 대해 “부채 수준이 높고 금융, 실물 간 괴리가 확대된 상황에서 자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동학개미’ 외끌이 투자의 한계

3,000시대에 안착하려면 개인투자자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코스피는 5일까지 7거래일 동안 250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개인투자자는 이 기간 3조 원 넘게 순매수한 반면 기관과 외국인은 3조 원 넘게 팔아치웠다. 개인투자자들은 지난해 11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매수를 했다. 반면 기관은 3월을 제외한 1년 내내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다. 외국인투자가가 순매수를 보였던 달은 1월, 7월, 11월에 불과하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기관투자가의 자금 유입이 병행돼야 안정적으로 3,000 선을 가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증권사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빚투’(빚내서 투자) 금액인 신용융자 잔액은 6일 사상 최대 규모인 19조6242억 원으로 불어났다. 1년 전(9조3769억 원)보다 10조 원 넘게 불어난 것이다. 20, 30대 ‘주린이’(주식과 어린이를 합친 조어로 주식 초보를 뜻함)들의 단타 매매도 불안 요인이다. NH투자증권이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1∼11월 20, 30대 신규 계좌의 회전율은 5248%, 4472%에 이른다. 이들 계좌의 평균 잔액은 약 583만 원, 1512만 원인데 빚투와 단타로 지난 11개월 동안에만 3억 원, 6억 원 이상의 주식을 거래했다는 뜻이다.


○ 기업 실적 발표, 공매도 규제 풀릴 3월 고비


코스피 종목의 97.7%가 코로나19 사태로 바닥을 찍은 지난해 3월 19일보다 주가가 올랐다. 전체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삼성전자 하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24%인 상황에서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이 발표되기 시작하면 시장이 조정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 교수는 “주가와 관련이 깊은 지표들과 비교, 분석해보면 지금 증시는 20∼30% 고평가돼 있다”며 “올해 1분기(1∼3월) 조정 국면에 들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코스피 시가총액을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이른바 ‘버핏지수’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04.2%까지 상승했다. 이 지수가 100%를 넘으면 지수가 고평가된 것으로 본다.

3월부터 풀릴 수 있는 공매도 제한 규제도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가 높은 상황에선 매도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늘어나기 때문에 공매도에 대한 부담이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가 더 심화된다면 기업 실적과 괴리된 주가는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며 “돈을 빌려서 투자했기 때문에 거품이 꺼지게 되면 가계부채가 부실화되면서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희창 ramblas@donga.com·김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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