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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의회 가서 항의” 연설뒤 몰려가… 총성-최루가스 아수라장

입력 | 2021-01-08 03:00:00

[트럼프 지지자들 美의회 난입]
4명 사망, 사상 초유 폭력사태




긴급 대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불복 주장에 동조하는 시위대가 6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좌석 뒤로 피신한 의회 관계자들이 몸을 낮추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이 6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난입으로 무법천지가 됐다. 시위대의 고함과 사이렌 소리, 총성과 최루가스로 뒤덮인 의회는 말 그대로 혼돈의 아수라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선언과 두 달 넘게 지속된 부정선거 의혹 제기, 각종 음모론 속에 터진 이번 폭력 사태는 “미국의 수치”라는 비판과 함께 미국 정치사상 최악의 장면 중 하나로 남게 됐다.

○ “시위가 아닌 폭동, 반란, 국내 테러”

이날은 의회가 상하원 합동회의를 열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를 확정하는 마지막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날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의회로 몰려간 트럼프 지지자들은 “선거가 도둑질당했다”고 외치며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다. 이들이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자 경호요원들이 입구를 책상으로 막고 부서진 창문 바깥의 시위대에 총을 겨누며 대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의회 경찰은 시위대 중 몸에 총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경찰은 시위대가 밀려들자 총을 쐈고, 그 과정에서 한 백인 여성이 총에 맞아 쓰러진 뒤 긴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국회의사당 안팎에서는 매캐한 최루가스가 터졌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시위대의 고함이 뒤섞였다. 진입을 저지하는 경찰들과 시위대 사이에 거친 몸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방탄조끼에 군복 차림을 하고 앨라배마주에서부터 왔다는 한 시위 참가자는 현장을 취재하던 본보 기자에게 “헌법을 준수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를 훔친 저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국회의사당이 폭도들의 공격을 받은 것은 1814년 영국군의 방화 사건 이후 처음이다. 시위대는 의원들이 긴급히 대피해 텅 빈 회의장의 의장석을 점거하고 “우리가 (대선에서) 이겼다”고 외치는가 하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사무실에 들어가 책상에 발을 올린 채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위터에 “의회 의사당에 대한 공격은 용납할 수 없다”며 “관련자들은 법의 최대 범위까지 기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트럼프 시대의 마지막 발악”

CNN방송 등 미국 언론은 “시위가 아닌 반란이자 폭동” “미국 역사 오욕의 날” 등의 표현과 함께 시위대를 강력히 비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날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며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미국은 이제 분열되고 포위되고 그 어느 때보다 위협적인 국가가 됐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시대의 ‘마지막 발악’”이라며 “지난 4년간 적대감과 분열을 불러일으켰던 대통령의 통치가 분노와 무질서, 폭력의 폭발로 마무리되고 있다”고 했다.

격화하는 시위를 지켜보면서도 침묵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거센 비난과 책임론이 불거지자 이날 오후 4시 40분경 트위터에 “의회에 있는 모두에게 평화를 유지할 것을 요청한다”며 “법을 지키고 의회 경찰의 말에 따르라”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오전 3시 40분경 의회가 바이든 당선인의 최종 승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자 “질서 있는 정권 이양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선거 결과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대선 불복 의사를 끝까지 굽히지 않은 것이다. 앞서 그는 시위대가 6일 오전 백악관 앞에 모였을 때 “의회로 가서 항의하라”며 오히려 난입을 부추겼다.

폭력적인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주 방위군과 경찰이 본격적으로 시위대를 진압해 의회 밖으로 밀어내면서 가까스로 진정되기 시작했다. 워싱턴 경찰은 이날 폭력 시위를 주도한 52명을 체포했다. 워싱턴은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식 다음 날인 21일까지 비상사태 선포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어둠이 깔리고 오후 6시 통금이 시작되면서 시위대는 점차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일부는 “내일도 다시 올 것”이라며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김정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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