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장악’ 대공세 참패한 집권세력 브라질 영화 빗대 기득권 세력 탓 핑계 친문 자신들이 슈퍼 기득권 카르텔인데 언제까지 정의로운 소수 피해자 행세할건가
이기홍 대기자
최근 집권세력 내에서 ‘사법쿠데타’론이 나온 데 이어 너도나도 넷플릭스 영화 ‘위기의 민주주의’를 강추하고 나선 것도 그런 차원의 이념적 선전선동술로 해석된다.
이 영화는 브라질의 재벌 사법부 언론 등 우파 기득권 카르텔이 ‘사법쿠데타’를 통해 민주화 세력의 상징인 룰라 전 대통령과 그의 후계자를 몰락시키고 극우정권을 세우는 과정을 그린 다큐다.
필자는 이들이 거론하기 이전에 영화를 봤는데, 몰락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안타까움에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 후 해외 신문 리뷰를 통해 감독이 객관성에 개의치 않고 한쪽만의 시각으로 팩트를 취사선택했다는 한계를 알고 실망했다.
그런데 설령 룰라의 몰락이 극우 카르텔에 의한 것이라는 영화의 설정이 100% 맞다고 가정해도, 민주화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사회를 중남미처럼 민주세력 대(對) 과거로 회귀하려는 극우독재 기득권 카르텔의 대결구도로 바라보는 화석화된 뇌구조가 집권세력의 핵심층에 남아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더구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영화 속 브라질 우파 카르텔에 비견되는 기득권을 쥐고 있는 세력은 바로 친문 집권세력이다.
룰라는 우파가 장악한 사법부에 무너지지만 한국은 대법원 헌재 중앙선관위까지 코드인사로 도배됐다. 브라질 검찰은 우파만의 보검(寶劍)인지 몰라도 한국의 검찰은 우파를 향해서도 적폐청산의 강공을 몰아쳤던 바로 그 칼이다. 브라질 상하원은 룰라 반대파가 다수지만 한국 의회는 정권이 장악하고 있다.
언론도 지상파 통신사 뉴스전문채널 등 전방위로 친여 코드인사들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중파 방송이 친여 선동가를 위한 스피커 겸 황금밥통으로 전락한 것은 5공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포털사이트에 대해서는 “들어오라고 하세요”라는 표현이 무심코 나올 정도니 정권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친문들은 기득권 카르텔의 핵심으로 보수신문을 꼽지만, 거의 100개 언론사가 네이버 뉴스스탠드에 자리잡은 포털 환경에서 메이저 신문의 기사라고 특별히 더 대우받는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여론이 이들 신문의 보도 및 논평과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이는 국민들의 생각이 같은 방향이고 더 많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입법 사법 언론 시민사회 등 전방위에 걸쳐 강력한 기득권 체제를 구축한 집권세력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우파 카르텔’ 때문에 개혁이 좌절된 것처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국민에게 거절당한 진짜 이유를 외면하고 싶어서다. 자신들의 탐욕에 개혁의 외피를 씌워 개혁을 변질시킨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 조국 살리기 방편으로 검찰개혁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한 윤석열 찍어내기로 변질시키지 않았다면 어느 국민이 개혁에 반대했을까.
하지만 당시 공수처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정권의 눈치만 살피는 검찰 대신 정권에서 독립돼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척결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차원이었다. 공수처 논의의 핵심은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이었는데 문재인 정권은 막상 검찰이 그런 역할을 하려 하자 검찰의 칼을 빼앗는 차원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검찰, 최재형 감사원, 일선 법원 판사들이 그랬듯, 헌법정신에 투철한 원칙론자로 알려진 김진욱 공수처도 정권보위라는 정권의 의도와 달리 본질적 미션에 충실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집권세력은 “역시 사법부 카르텔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며 공수처마저 흔드는 추레한 행태를 보일 것이다.
그러면서 실재(實在)하지도 않는 우파 카르텔 탓을 하는 프로파간다를 이어갈 것이다. 콘크리트 지지세력에 자기 무장논리를 공급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법치와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잘못을 인정하고 협치의 길로 접어드는 게 회복의 길이지만 콘크리트가 굳어버려 발목이 갇힌 신세다.
턱도 없는 룰라 비유로 분칠하려 하지 말고, 브라질의 사례에서 배우려거든 룰라가 2010년 퇴임 시 87%의 높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급진좌파 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집권 8년간 실용 온건 중도 노선으로 협치와 경제성장을 이뤘기 때문임을 먼저 배워야 한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