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사회부 차장
조 씨는 어려서부터 장래 희망이 외과의사였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외국어고와 명문 사립대를 거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에서 공부하며 14년 만에 꿈에 거의 다가섰다.
그에겐 대학의 생리를 아는 교수 부모의 열성적인 지원이 있었다. 조 씨가 고교 1학년일 때 어머니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방학 2주밖에 없으나 리서치 페이퍼 반드시 쓰도록 할 것. 졸업할 때까지 2개 나오게.’
정 교수가 총장 표창장까지 위조하며 온갖 반칙을 감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 씨가 간발의 차로 서울대 의전원에 떨어지고, 역시나 간발의 차로 부산대 의전원에 붙는 과정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 씨는 70명을 뽑는 서울대 전형에서 72등이었다. 100점 만점에 0.05점 차로 떨어졌다. 부산대에서는 불합격자 중 1등과 고작 1.16점 차였다.
시험 점수는 실력에 따라 매년 갱신되지만 잘 만든 스펙은 해를 거듭해도 감가상각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정 교수 재판에서 확인됐다. 조 씨는 대학입시에 쓴 스펙을 4년 뒤 의전원 입시 때도 요긴하게 재활용했다. 조 씨가 다녔던 외고 유학반에는 ‘학부모 인턴십 프로그램’이란 게 있었다. 엄마들이 자녀의 입시용 스펙을 쌓아주려고 남편 또는 자신이 소속된 대학이나 공공기관, 기업에서 인턴을 할 수 있게 서로 주선해줬다. 보통의 부모들은 엄두도 못 낼, 그들만의 ‘스펙 품앗이’ 시스템이었다.
숙명여고 교무부장 아버지와 함께 문제 유출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의 재판에서 검사는 실형을 구형하며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거짓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했다. 두 자매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진리일 텐데 쌍둥이 자매와 조 씨는 교육자인 부모로부터 이런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조 씨는 지난해 9월 의사 국시 실기시험을 통과해 7일 필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가 국시 시험장에 오기까지 순수한 노력으로 이룬 결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결실은 거짓으로 덧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1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된 정 교수의 입시비리가 유죄로 확정되면 조 씨의 의전원 합격이 취소될 수 있고 자연히 의사 국시 합격도 무효화된다. 입시의 성공이 국시의 실패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