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로 탄핵 위기에 몰렸다. 미국 야당인 민주당이 현 정부 내각에 트럼프 대통령을 해임하라고 요구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 연방검찰은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을 부추겼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소 가능성까지 내비쳐 퇴임을 앞둔 트럼프가 벼랑 끝으로 몰리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 난입 시위대를 두고 뒤늦게 ‘폭력적인 단체’ ‘처벌받게 될 것’ 등이라고 언급하면서 “순탄한 정권이양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같이 궁지에 몰린 자신의 처지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7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수정헌법 25조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을 해임하라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촉구했다. 수정헌법 25조는 대통령이 해임 사망 사임 등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부통령이 권한을 대행하도록 했다. 부통령을 포함한 내각의 과반수가 ‘대통령이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데 찬성하면 부통령이 권한 대행을 맡는다. 펠로시 의장은 “대통령을 몰아낼 것을 부통령에게 요청한다”며 “부통령과 내각이 응하지 않으면 의회는 탄핵 절차를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펠로시 의장은 또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직구를 계속 수행하면 안 되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면서 “앞으로 남은 임기 13일이 미국에는 매일 ‘공포 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 해임을 요구했다. 슈머 대표와 펠로시 의장은 대통령 해임을 촉구하기 위해 펜스 부통령에게 전화를 했으나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을 해임하는데 반대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해임을 강행할 경우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트럼프에 대한 해임이나 탄핵 추진에는 관심이 없다고 CNN이 보도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20일에 있을 취임식 준비와 집권 후 추진할 정책들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다짐하면서 사실상 선거에 승복하는 연설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영상메시지에서 “이제 의회가 대선 결과를 인증했고 새 행정부는 1월 20일 출범한다”며 “나는 순조롭고 질서있는 정권 이양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승복’이라는 표현을 직접 쓰지는 않았고 바이든 당선인을 축하하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임기가 끝난다는 것을 시인했다는 점에서 미국 언론들은 사실상 승복 선언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는 또 “이 순간은 치유와 화해를 요구한다”며 “나의 훌륭한 지지자들. 나는 여러분이 실망했다는 걸 안다”며 “그러나 우리의 놀라운 여정은 이제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여행의 시작’이란 표현이 4년 뒤 대선 재출마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의 줄사퇴도 현실화되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부인인 일레인 차오 미 교통장관은 7일 성명에서 전날 발생한 의회 폭력사태를 거론하며 다음주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어 벳시 디보스 교육 장관 역시 “폭동을 선동한 대통령의 역할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타일러 굿스피드 미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 엘리노어 맥캔스-카츠 보건복지부 차관보도 이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전날에도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스테퍼니 그리셤 영부인 비서실장 등이 줄줄이 행정부를 떠났다.
시위대의 의회 난입 사태를 수사 중인 워싱턴 연방검찰의 마이클 셔윈 검사장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의회에 들어간 사람들 뿐 아니라 이들을 도운 사람도 모두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위대와 “싸움을 벌인 의회 경찰 1명이 숨져 이번 사태와 관련한 사망자는 모두 5명으로 늘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