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 배상” 위안부 판결]국가간 재판 불가 ‘국가면제’ 깬 판결 법원 “주권국가 존중 위한 국가면제, 국제규범 위반한 범죄엔 적용 안돼” “한일청구권협정-위안부합의로는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 포괄못해” ‘청구권 유지’ 할머니들 손 들어줘
사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중앙지법은 8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한 판결을 내리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 법원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국제법상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에 대해 재판부는 각종 국제법을 근거로 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 “주권면제 원칙, 배상 회피 수단 아니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한국 법원에서 주권을 가진 다른 나라의 정부를 피고로 삼아 재판을 할 수 있는지였다. 국제관습법상 주권 국가는 원칙적으로 다른 나라의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가면제(State immunity) 원칙’이 있다. 일본 정부가 2016년 1월 이후 소송자료 송달을 거부하면서 재판을 무시해 온 근거이기도 하다.
이어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에 의해 사실상 성노예나 다름없었다는 점에서 국제법상 절대규범을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일제는 침략전쟁 수행 과정에서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안소’를 운영했고, 원고들은 위안부로 동원됐다”면서 “이는 당시 일제가 비준한 조약 및 국제 법규를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2차대전 이후 도쿄재판소 헌장에서 처벌하기로 한 ‘인도에 반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 “청구권협정과 위안부 합의에도 청구권 유지”
재판권을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한일 양국 간에 체결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따른 개인의 청구권 소멸 여부였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사건 때부터 “이미 1965년 협정으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이 소멸됐다”는 주장을 펼쳐 왔고,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2015년 합의가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이나 위안부 합의를 통해 피해를 입은 개인들에 대한 보상을 포괄하지 못했다”며 “협상력과 정치적인 권력을 갖지 못한 개인에 불과한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소송 외에 구체적인 손해배상을 받을 방법이 요원하다”고 설명했다. 1년여간 변론이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이 같은 청구권 논쟁이 불거지지 않았지만 재판부가 직권으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는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수 의견을 통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내세운 논리 구조와 사실상 같다.
○ 판결 확정되더라도 배상까지 험로 예고
유원모 onemore@donga.com·장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