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차와 차 업계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오늘은 자동차 업계와 연관된 ‘팬덤 브랜드’를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테슬라를 중심으로 일종의 ‘팬덤’을 거느린 기업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짚어보려는 것입니다.
그런 팬덤이 어떻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이런 기업들이 자동차 산업을 얼마나 크게 바꿔 놓고 있는지를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최근의 ‘애플카’ 구상 공개 그리고 현대자동차와의 협력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애플’이야말로 원조 ‘팬덤 기업’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한데요.
그런 측면에서도 같이 언급을 하겠습니다만…
애플의 자동차 사업과 관련해 어제 뜨겁게 달아올랐던 국내의 관심에 대해 오늘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조금 제한적일 것 같다는 점은 미리 말씀드립니다.
테슬라 차량의 매력적인 면에 대한 얘기가 이번 편에 함께 얹혀지면서 조금 긴 글이 될 것 같다는 점도 미리 알려드립니다.
▶ 롤스로이스 ‘뉴 고스트’ 4억7100만 원…디테일 정말 다를까?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10102/104738408/1
▶ 김도형 기자의 휴일車담 전체 기사 보기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10900000002
● 테슬라, 가장 뜨거운 자동차 기업
현재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자동차 기업은 어디일까요.
많은 분들이 어렵지 않게 ‘테슬라’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전기차에 대한 관심, 최근 보여주는 판매량 증가 그리고 일론 머스크를 세계 최고의 부호로 밀어올린 시가총액….
많은 측면에서 테슬라에 대한 관심은 뜨거운 정도를 넘어서 폭발적인 수준입니다.
8일 기준 테슬라의 정규장 종가는 880.02 달러였습니다.
천슬라, 이천슬라라고 불리던 테슬라 주가가 오히려 떨어진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간혹 있으시겠습니다만…
현재의 테슬라 주가는 1개의 주식을 5개로 액면분할한 이후의 주가입니다.
액면분할 이전으로 보자면 ‘사천슬라’를 훌쩍 넘어서 4400달러 고지에 올라선 셈입니다.
유동성 폭발기에 테슬라의 시총이 기업 가치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만은 아니겠습니다만 자동차도 주가도 모두 가장 뜨거운 관심과 기대 속에 있다는 점만은 크게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테슬라의 ‘모델S’
국내에서 미국 주식 투자를 하시는 분이라면, 테슬라 주식을 갖고 계신 분이 그렇지 않은 분보다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짐작도 감히 해 봅니다.
앞서의 가장 뜨거운 자동차 기업을 묻는 질문에 ‘테슬라’라고 답하기 싫은 분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는 ‘테슬라는 자동차 기업이 아니고 플랫폼 기업이야’ 등과 같은 시각을 갖고 있는 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테슬라, 기존 車 기업과 뭐가 다르길래?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의 선구자라는 점 그리고 전기차 시장의 확실한 성장 가능성 때문에 폭발적인 관심을 모은다는 점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전기차는 테슬라만 만드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다르냐는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테슬라라는 기업이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일론 머스크라는 경영자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 폰’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젖혔던 것처럼, 머스크는 전기차를 세상의 중심으로 끌어당긴 사람입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물론 조금은 다릅니다. 잡스 이전에는 스마트 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겠습니다만 머스크 이전에도 전기차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하고 있을 때 여러 차례의 위기를 넘기면서 시장을 지금의 위치까지 끌고 온 것은 머스크의 힘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2019년 가을에 저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한 독일 기업들이 자동차에 대한 자신감을 ‘뿜뿜’해 왔던 그곳에서 실제로 생각해야 했던 것은 아마, 모터쇼에 참석하지도 않은 테슬라와 머스크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존심 꼬장꼬장한, 그리고 자동차 산업이 기계공학의 결정체 시대였던 때에는 그 자존심에 걸맞는 멋진 차들을 만들어 온 독일 브랜드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전기차의 시대가 왔다는 점을 우리도 인정하겠다, 는 자리가 바로 그 모터쇼처럼 느껴졌었기 때문입니다.
‘전기차? 언젠가는 오겠지.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라는 애매한 상황에서 테슬라는 시판차 가운데 제로백이 가장 빠른 고급전기차(모델S), 날개처럼 문이 열리는 SUV(모델X) 그리고 이제는 누구나 넘겨다 볼 수 있는 대중전기차(모델3)를 연달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화살은 차례로 과녁에 적중했습니다. 전기차 물결은 특정한 국가가 주도한 것도 아니고 모든 기업이 한꺼번에 집중해서 만들어 내지도 않았습니다.
미리 준비한 기업도 있고 그렇지 않은 기업도 있지만, 세상의 관심을 모두 전기차로 몰고 온 것이 머스크이기에 테슬라는 전기차의 선구자일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전기차가 정말로 친환경차냐, 정말 그렇다면 내연기관차 혹은 하이브리드차 정도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비율로 더 친환경차인 것이냐…
그리고 발전원에 따른 전력생산 문제와 배터리 생산 및 충전 인프라 구축에 따른 자원 투입, 폐배터리 이슈까지 감안했을 때 정말로 압도적인 ‘친환경적’ 대안이냐 등에 대한 의문도 사실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이런 복잡한 논의를 다소 생략한 채 전기차 시대로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현재로서는 그것이 그냥 현실일 뿐입니다.
이런 상황을 앞장서서 이끌면서 ‘전기차의 상징’으로 떠오른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이기에 테슬라는 남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 車에 대한 접근 차체를 바꾼 테슬라
이런 테슬라에 대한 팬덤은 대단해 보입니다. 저는 최근에 새삼 이런 팬덤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저와 동료들이 ‘테슬라 차량의 문이 전력공급이 끊겼을 때는 열기 힘든 상황에 처한다’는 점과 ‘특히 모델3의 뒷문은 안에서는 열 길이 없다’는 문제를 지적하면서였습니다.
보도 이후에는 온라인 공간에서 이 문제에 대한 토론과 탐구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실험에 나선 고객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반에는 다소 오해가 생기는 주장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양상이 달라지는 것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전력 공급 차단’이라는 상황과 관련해서 차를 구석구석 살펴보지 않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것 같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저 차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저 차로 무엇까지 해 보는 것일까. 테슬라 팬인 고객에게 테슬라 차량은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지나간 논란에 대해 다시 시비를 가리자는 것도 아니고 다소 오해가 있는 컨텐츠를 새삼 반박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차 업계에서는 늘 차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던 것 같은 고객들이었는데 테슬라를 향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런 팬덤을 바다 건너에 있는 머스크가 트위터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교적 많은 내연기관차를 타봤지만 테슬라의 차량은 ‘모델S’ 차량을 조금 길게 타본 것이 전부이긴 한데요.
그래도 짧지 않은 시승 기간에 차량 충전까지 직접 해 보면서 제가 느낀 것, 그 이후에 생각한 것 그리고 완성차 업계의 의견을 나름대로 종합해 보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것이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 테슬라는 ‘업데이트’를 하나 했습니다.
무선통신으로 연결된 테슬라의 차량이 ‘바퀴 달린 IT기기’라는 얘기,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모델3 등 일부 차량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주어진 지난 연말의 업데이트는 테슬라가 가진 힘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소개한 일론 머스트의 트위터.
‘붐박스’라는 기능인데 쉽게 말하면 외부에서 음성, 음악 파일을 차에 넣으면 클락션을 울릴 때 이 음성 파일이 재생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차량 외부를 향해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스피커가 있고 이걸 보다 적극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인데요.
무선 업데이트로 이런 기능을 추가하는 것 자체가 기존의 자동차 기업들은 상상하기가 좀 힘이 듭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사실 별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테슬라는 큰 비용을 안 들이고 고객의 만족도를 높여준 셈 인건데 기존 자동차 업계에서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여느 산업이 그러하듯 자동차 산업에서도 제품 생산의 가장 중요한 밑단에 ‘원가’ 개념이 있습니다.
업데이트를 해줘야 활성화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이렇습니다.
‘차를 만들 때 분명히 원가를 더 들였음에도 아직 개봉하지 않은 기능을 넣은 채로 차를 출고해야 한다.’
기존 완성차 업계에서 이런 일은 좀 무리하게 말해서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심지어 테슬라의 일부 업데이트 혹은 사후 구매 옵션은 ‘이미 장착해 놨지만 활성화하지 않았던 하드웨어적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용자가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거나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으면 불필요한 ‘오버스펙’을 달아 놓고 그 돈 포함하지 않은 가격으로 차량을 내보내자는 얘기를 했던 기존 완성차 업계 개발자는 없었을 것 같은데…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멀쩡히 월급 받으며 혼자 딴 세상 사느냐고 시말서 써야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테슬라가 보여주는 작지만 큰 디테일
테슬라 차량의 장점, 시승을 해봐야 느낄 수 있는 디테일들도 있습니다.
제가 타본 모델S의 경우 앞차에 가깝게 붙으면 ‘이쪽 방향으로 몇 센티미터 붙었다’고 알려주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앞차와의 거리를 알려주고 있는 테슬라 모델S의 운전자 디스플레이.
그냥 삐삐삐삐, 삐이이이익. 이 아닙니다. 몇 센티미터 남았으니까 조심해, 이걸 운전석 디스플레이(과거의 계기판)에서 큰 숫자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타 본 차 중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와 롤스로이스를 포함해서 이런 기능을 적용한 차는 없었습니다.
기존의 차 업계처럼 센서 등을 활용해서 조금 먼 거리에서는 ‘삐삐삐삐’ 소리를 내고 거리가 많이 가까워졌을 때는 ‘삐이이이익’ 소리를 내는 방식은 비교적 정확한 거리파악이 잘 안 되는 것일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삐삐삐삐’와 ‘삐이이익’을 구분하기 위해서도 분명한 거리의 기준이 있고 그에 맞춰서 설계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기존 완성차 브랜드들 역시 어느 정도 오차 범위에서 센티미터를 뽑을 수 있겠지만 그런 걸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우선 그렇게까지 친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안 해 왔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까지 과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맞다는 게 그동안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공통 문법이었습니다.
괜히 그런 거 넣었다가 센티미터가 틀리면 망신인데 그 때문에 접촉사고라도 빚어진다면 누가 책임지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런 논리가 우세할 가능성이 더 높은 곳이 기존의 완성차 업계일 수 있습니다.
기존 업계를 위한 얘기를 덧붙이자면, 신뢰성 그리고 안전성 문제에서만큼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오래된 원칙이었습니다.
스마트 폰은 치명적인 고장이 나더라도 중요한 순간에 통신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가 전부이겠습니다만…
고속 중량물인 자동차의 안전성과 신뢰성 문제는 탑승자는 물론 주변의 차량과 사람들을 포함해서 다수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래왔던 것이겠습니다.
● 직접 안 봐도 옆 차가 세단인지 SUV인지 구분 가능
이런 디테일, 물론 또 있습니다.
이른바 ‘자율주행’ 기술로 각광 받는 테슬라인데 물론 아직 엄밀한 의미의 자율주행은 아닙니다.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의 범주에 들겠는데 테슬라는 차가 가진 ‘능력’을 눈으로 확인시켜 줍니다.
요즘 고급 차를 타보면 운전석 디스플레이에 주변의 차량을 그래픽으로 구현해 주는 경우가 많은데요.
옆으로 차가 지나가고 내 앞으로 끼어들고 이런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부분 꽤나 정확합니다.
그런데 제가 타본 모델S는 내 옆을 지나가는 차들이 ‘어떤 차’인지를 보여줍니다.
세단인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지 혹은 트럭인지.
열심히 비교해 봤는데 그래픽의 정확성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얼추 다 맞습니다.
운전자 주변의 차량 상황을 보여주는 테슬라 모델S의 운전자 디스플레이. 왼쪽 앞에 살짝 보이는 파란색 소형트럭을 그래픽으로 거의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차단봉이 있는 도로 등에서는 도로상의 장애물 역시도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자동차가, 내가 이렇게 주변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타 본 대부분의 테슬라 아닌 차들은, 이런 방식의 ‘과한 친절’을 역시나 잘 베풀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도 주요 도로에서는 선행 조건이 충족되면 정말로 스스로 차선을 바꿔서 진출입로에 들어서는 수준의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런 디테일에서도 테슬라는 기존 완성차 업계와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것 같습니다.
● 테슬라, 부정적 이슈를 압도하는 ‘팬덤’
테슬라가 보여주는 이런 모습이 기술적으로 ‘외계인 고문’을 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닌 것 같기는 합니다.
어떤 차를 만들어야 하나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개념적인 방향 자체를 기존과는 좀 다르게 가져가는 것에서 나오는 차이 아닐까 싶은데요.
기술보다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일 수 있는 셈입니다만 그나마도 어마어마한 상상력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테슬라 모델S의 전방 짐칸. ‘프렁크’라고 부르는데 엔진이 없기 때문에 전면 공간을 확 줄일 수 있는 전기차의 특징을 아직 완전히 살리지는 않은 디자인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 여러분들의 일상과 함께 하는 스마트폰이 구현하고 있는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들을 생각해보면…
테슬라가 몰고 온 변화가 세상에 없던 혁신을 지향한다기보다는 기존의 차량들이 너무 진부한 문법에 갇혀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스크의 힘과 테슬라가 보여주는 이런 새로운 모습은 고객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고객들이 일종의 테슬라 팬이 됐고 이런 점은 테슬라의 핵심 경쟁력이 됐습니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해 회사는 물론이고 그 유명한 ‘강성 노조’까지 나서서 차량 조립 과정에서 외부 강판들 사이에 발생하는 과도한 오차라고 볼 수 있는 ‘단차’를 잡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테슬라 고객들 사이에서는 “웬만한 단차는 테슬라 정품 인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생산 노하우가 충분하게 쌓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입니다. 팬이 되고 나면 ‘사소해 보이는 것’들은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존 브랜드들은 전반적인 성능 향상은 물론이거니와 최종 제품의 완성도를 조금씩이라도 높이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아왔습니다.
단차 없고 균질한 도장면을 가진, 아주 매끈하게 마감된 차라는 것은 자동차 산업 속의 누군가에게는 일생의 목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차는 테슬라인데 단차가 대수냐, 흠집 좀 있는 건 문제가 아니야’라고 하는 고객들이 있다고 하니, 팬덤은 그런 것인가 보다 싶습니다.
● 팬덤 거느린 머스크, 막대한 비용 절감
머스크의 입장으로 눈을 가져가면, 팬덤이 가진 아주 큰 힘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팬덤을 거느린 기업의 최대 경쟁력은 가만히 있어도 ‘갑’이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기업이 고객에게 ‘갑’이 된다면(테슬라가 갑질을 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무엇이 달라질까요?
그냥, 쉽게쉽게 갈 수 있는 일들이 참 많아집니다. 테슬라가 보여주는 그대로입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는 세일즈 조직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합니다.
고객들이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계약을 하는 방식인데요.
여기서 절감되는 비용은 기업의 경쟁력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수준 아닐까 싶습니다.
5만 명이 넘는 현대차 노조 가운데 판매영업과 관련된 ‘판매위원회’ 노조원이 6500명가량 된다고 합니다.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9년 현대차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이 연 9600만 원이었습니다.
그러니 현대차가 테슬라처럼 온라인 판매를 한다면 대략 연간 6240억 원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걸까요?
당연히 이보다 훨씬 큽니다.
자동차 판매·전시장은 공간을 잡아먹습니다. 목 좋은 자리에 공간을 유지해야 하고 전시차를 깔아야 하는데 당연히 모두 비용입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현대차 판매위원회는 본사 소속 직원들입니다. 직영점이 아니라 ‘대리점’에서 판매되는 과정에서 쓰이는 돈 역시 기업에게는 큰 비용입니다.
무엇보다 현대차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해외에서의 딜러십 기반으로 운영되는 세일즈 조직 역시 다 비용이고 차량 가격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건 현대차만의 상황이 아닙니다.
기존의 거의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이렇게 차를 팔아 왔습니다. 브랜드 파워가 크기로 유명한 포르쉐 같은 브랜드도 기본적으로는 이렇습니다.
필요했던 일이기도 합니다. 수천, 수억 원짜리 차량을 사려면 실물을 봐야 하고 영업직원의 설명을 직접 듣게 되면 모델부터 색상, 옵션까지 많은 것들의 선택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영업직원들은 차량 선택을 도와줄뿐더러 장기간의 유지·관리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람이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만족이 분명히 있습니다.
테슬라 ‘모델 X’. 테슬라코리아 제공
하지만 테슬라는 입장이 많이 다릅니다.
현재 선택할 수 있는 모델과 옵션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기도 한데 고객이 먼저 찾아와서 ‘내가 오랫동안 공부해보고 왔는데 이걸로 주세요’하는 수준이면 전국 방방곡곡에 전시·판매장을 깔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거점별 전시장 정도는 테슬라코리아도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게 일단 수용되기 시작하면 ‘테슬라는 원래 이렇게 사는거야’라는 논리가 시장에 안착될 수 있습니다.
‘고객이 찾아오는 브랜드’ ‘고객이 입소문 내는 브랜드’를 만들면 홍보 분야의 예산 역시 크게 줄일 수 있겠습니다.
일론 머스크 트위터의 팔로워는 4000만 명이 넘습니다. 여기에 메시지를 띄우기만 해도 다이렉트로 메시지가 전달이 되는데 뭐가 아쉬울까요.
● 시장 키우는 테슬라, 거세질 도전들
마냥 멋지기만 한 것 같은 테슬라인데, 물론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앞으로 마주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그리 간단치 않은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른 제품과 비교했을 때 전후방의 고용효과가 막대합니다.
유럽 각국과 미국, 일본, 한국 등 주요 자동차 생산국에서는 자동차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큽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자국 산업 발전과 고용 유지라는 관점에서 이 거대한 산업을 함께 ‘핸들링’합니다.
각 기업의 자동차 사업을 ‘4륜구동 자동차’로 보자면…
제 생각에는 기업이 그 2바퀴를 굴린다면 나머지 2바퀴 정도는 정부 그리고 국가 전체(노사 문화, 시민들의 인식 등)의 손에 맡겨져 있는 산업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데요.
때로는 기업이 좌회전하고 싶어도 주변 여건 때문에 직진해야 하는 산업일 수도 있습니다.
201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핵심 가운데 하나도 ‘폭스바겐의 저가 전기차 출시’ 그리고 그에 화답하는 독일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수정이었습니다.
당연히 정부와 업계의 조율이 미리부터 있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라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시각입니다.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자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지 아니면 자국에 생산 기지라도 두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세계 모든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에 가깝습니다.
세금 내고 고용해서 국가에 기여하는 기업은 국민과 국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대략 50만 대를 판 테슬라가 몸집을 빠르게 키우면서 100만 대를 넘겨다본다고 하니 이제 이런저런 견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테슬라의 급성장을 이끈 ‘모델 3’. 테슬라코리아 제공
해마다 또 집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폭스바겐과 도요타가 1000만대씩 가량을 팔고 르노-닛산, 제너럴모터스가 크지 않은 차이로 3, 4위를 차지하는 시장입니다. 5위 현대·기아차도 700만 대규모를 넘습니다.
이런 글로벌 공룡 자동차 기업의 눈에도 이제 테슬라의 ‘숫자’가 위협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때가 오고 있습니다.
당장 올해부터 주요 브랜드의 전기차 신 모델들이 쏟아져 나오니 흥미로운 ‘대전(大戰)’이 벌어질 참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전기차 영역만큼은 ‘테슬라 vs 비테슬라’의 싸움으로 보는 대전투이기도 합니다.
자율주행을 앞세우고 차를 전자기기처럼 만드는 설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테슬라의 전자식 도어와 기존 완성차 업계의 문 설계가 가진 차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전통 브랜드의 오래된 설계가 가진 의미가 있고 테슬라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고가 나면 차량 문의 잠금은 ’언락‘한다. 그런데 탑승자가 튕겨져 나가는 상황은 또 막아야 하기 때문에 ’언락‘될 뿐 문이 열려 버리면 안 된다.’
‘언락 상태에서 문고리를 손으로 가볍게 당겨서 여는 ’래치‘(문이 안 열리게 잡고 있는 장치)는 강제적인 힘에는 1톤이 넘는 힘까지 버티게 설계하라고 규정돼 있다.’
기존 차 업계는 이런 구조 위에서 오랜 고민이 반영된 도어를 설계해 왔다는 것을 저도 취재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작은 사고로 문의 잠금이 풀리게 하면 범죄 가능성이 있으니 에어백 전개 등을 기준으로 ’언락‘ 한다.’
‘문 잠금 장치에 전자제어를 얹어도 아날로크 케이블로 래치를 열 수 있는 구조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고민들을 기존 제조사들이 해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것 역시 기존 업체들의 ‘올드’한 문법일 뿐이고 테슬라는 사고가 나도 전기가 완전 차단되는 상황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념이 다른 설계를 기반으로 하는 테슬라 차량에서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은 없을지, 테슬라 판매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문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입니다.
기술 일반론적으로 봤을 때 완전한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과제를 넘어야 할 것 같다는 평가가 내려져 있는 자율주행 기술 역시 테슬라가 과도한 자신감을 보였을 때는 문제를 부를 가능성이 남아 있겠습니다.
물론, 테슬라는 기존 기업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른 변화로 유명하고 소프트웨어를 통한 컨트롤에서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으니 우려할 만한 문제를 안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 ‘팬덤 기업’, 자동차 산업을 바꿔놓을까
이런저런 의문 속에서도 테슬라는 순항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테슬라만의 이점을 다른 기업들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모든 기업이 팬덤을 거느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만 시장을 독과점하거나 일부 고객들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받는 기업은 위기에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에르메스 같은 명품 브랜드, 롤렉스 같은 고가 시계 브랜드는 회사로부터 ‘간택 받지 않으면’ 돈을 싸들고 가도 물건을 살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불황에도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자신감의 근거입니다.
강력한 팬덤을 가진 테슬라가 그런 이미지를 계속 지키면서 올해 또 한번 기록적인 성장을 보여줄 수 있을 지는 관심 있게 지켜볼만한 대목입니다.
그리고 최근 전해진 애플의 자동차 산업 진출 구상도 ‘원조 팬덤’ 기업의 자동차 산업 진출로 장기적으로 지켜볼 이슈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로는 사실 확실한 것이 많지 않습니다만…
애플이 현대차를 포함한 복수의 완성차 기업에 자율주행 전기차 협력을 제안했다, 라는 것을 기본 팩트로 놓고 보면 되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직접 생산을 잘 하지 않았던 애플이 자동차 산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앞으로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 같은데요.
자신의 브랜드를 가꾸고 그 브랜드의 힘으로 경쟁 브랜드와 오랜 기간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던 기존 완성차 업체들로서는 애플이 어떤 전략을 펴려는 것인지부터를 놓고 고민이 아주 깊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해 취임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애플의 제안을 놓고 고민이 깊은 최고경영자가 세계에 여러 명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현대차그룹 제공
스마트 폰에서의 구도처럼 애플이 ‘폭스콘 같이 하드웨어 제조사의 존재를 지우면서 제품을 만드는 역할을 해달라’고 했을 때 주요 완성차 기업으로서는 선뜻 수용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서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애플이 요구하는 조건을 웬만하면 들어주려는 기업이 있을 수도 있고, 요즘 자주 보는 ‘조인트벤처’와 같은 방식을 선택하는 기업이 나올 수도 있고…
아주 다양한 방식의 협력이 누군가와 그리고 언젠가는 이뤄질 수도 있겠습니다. 기존에는 없었던 방식의 협력일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무한대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애플’이라는 브랜드와 그 팬덤이 가진 힘 그리고 무엇보다 애플이 그동안 키워온 ‘사람에 대한 이해’가 기존의 자동차 업계에서는 너무 탐나는 요소일 수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자동차 업계에서 탐낸다’기 보다는 온 세계의 고객들이 애플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자동차를 원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스마트폰을 만들어낸 상상력으로 자동차에 접근했을 때 자동차는 또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변화할 것이냐는 기대감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기대감은 테슬라를 보면서 자동차라는 영역도 혁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점을 느끼고 있는 시기라는 점 때문에 더 클 수 있습니다.
유난히 길어진 휴일차담을 관심 있게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변화하는 자동차 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김도형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