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얀마 관리들이 양국 국경에 설치되고 있는 철조망을 살펴보고 있다. [ISEAS]
세계 최대 토목공사
중국 정부가 2200km에 달하는 미얀마와의 국경에 ‘남방 만리장성’으로 불리는 장벽을 세우고 있다. 중국은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국경 총길이는 2만2000km에 달한다. 이들 국가를 보면 몽골(4710km), 러시아(4354km), 카자흐스탄(1753km), 인도(1700km), 네팔(1415km), 베트남(1347km), 키르기스스탄(1096km), 부탄(600km), 파키스탄(500km), 라오스(500km), 타지키스탄(400km), 북한(1400km), 아프가니스탄(92km) 등이다. 이 가운데 중국 정부가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곳은 미얀마와의 국경지역이다. 중국 윈난성과 국경을 접한 미얀마 북부 카친주, 샨주 등에선 정부군과 소수민족 반군 간 유혈 충돌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미얀마-라오스-태국 국경지대는 이른바 ‘골든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로 불리는 세계적인 아편 생산지다. 이 황금 삼각지대는 아편 생산에 최적인 기후와 자연조건을 갖췄다. 미얀마는 현재 헤로인의 기본 원료인 아편을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재배하는 나라로 꼽힌다. 특히 이 지역의 아편 생산은 중국의 수요 증가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미얀마 아편을 정제한 헤로인의 최대 소비국은 중국이다. 10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마약 중독자들이 미얀마에서 아편 생산 확대를 촉발하고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미얀마 샨주에서 마약 단속을 통해 펜타닐의 제조 원료인 메틸펜타닐 3748.5ℓ와 메스암페타민(필로폰) 1억9350만 정(17.4t), 헤로인 292kg, 아편 588kg, 모르핀 49kg 등을 압수했다. 당시 압수한 마약들은 사상 최대 규모였다.
미얀마 마약 밀매 조직은 대부분 이 지역의 반군들 및 중국 마약 조직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중국으로부터 전구물질(화합물을 합성하는 데 필요한 재료가 되는 물질원료)을 불법으로 수입해 마약을 제조하고 이를 다시 중국으로 밀수출한다. 미얀마 정부는 이 지역에서 반군세력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휴전을 맺은 상태라 반군 특별자치지역 내에서 필로폰 등 마약 생산에 대한 통제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벽을 건설하는 숨은 의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 등 중국 관리들이 미얀마 인근 국경 지대를 시찰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게다가 중국 정부는 미얀마로부터 코로나19가 유입될 것을 상당히 우려해왔다. 이 때문에 윈난성 정부는 그동안 엄격한 국경 통제 조치를 가동하는 등 코로나19 유입 차단에 주력했다. 윈난성 정부는 경찰과 국경수비대, 공무원은 물론 군대까지 동원해 국경을 따라 24시간 검문 및 순찰을 하고 있다. 윈난성 공안 당국은 미얀마 국경을 넘어 불법으로 입국하려던 자국민 수백 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미얀마 북부로 탈출했다 미얀마 내 코로나19 확산이 우려되자 중국으로 돌아오려던 사람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 초 미얀마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659km를 건설했다. 중국 정부는 2022년 10월까지 미얀마와의 모든 국경에 고압 철조망 장벽은 물론, 감시 카메라와 적외선 센서 등을 설치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가 장벽을 세운다면서 내세운 이유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또한 미얀마 난민의 유입과 마약 밀매도 막으려는 것이라고 장벽 건설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윈난성 공안 당국은 2014년 이후 미얀마로 불법 출국을 기도한 553명을 체포하고 4명을 사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제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위구르족 수백 명이 이 지역을 통해 미얀마로 밀입국한 후 터키로 망명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들 중 대다수가 위구르족의 종교와 문화를 통제하려는 중국 정부의 민족적 폭력을 피해 도망간 피난민이라고 밝혔다. 중국 반체제 인사들도 공안 당국의 체포를 피해 이 지역을 통해 다른 나라로 피신해왔다. 탈북자들도 중국을 거쳐 이 지역을 통해 태국 등으로 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중남미 사람들의 불법 이주를 막고자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했다면, 중국 정부는 정반대 이유로 장벽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불법 이민을 막겠다는 공약을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멕시코와의 국경지역에 738마일(약 1187km) 길이의 장벽을 건설했다. 이 사업 예산은 150억 달러(약 16조3600억 원)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외곽에 장벽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쉐커라이티 자커얼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주석은 “해외 무장세력의 침투를 막기 위해 국경지역에 장벽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신장지역의 국경은 5700km에 달한다. 실제로 장벽이 건설되면 미국이 멕시코 국경에 세우려는 장벽(3144km)보다 훨씬 길다. 중국 정부는 해외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 연계된 신장지역의 분리주의자들이 독립운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본다. 터키계 인종인 위구르족의 거주지 신장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한때 동(東)투르키스탄 공화국으로 독립된 지역이었으나, 1949년 중국에 의해 강제 병합된 이후 민족 차별과 종교 탄압에 반발하는 분리 독립 활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테러단체로 규정한 해외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라는 단체다. ETIM은 위구르족이 세운 독립운동 단체로, 그동안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등에 거점을 두고 중국 정부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해왔다. ETIM은 2003년 톈안먼 차량 돌진 테러, 2011년 신장 연쇄 테러 등 각종 테러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왔다.
‘5G 검문소’ 설치 추진
중국 정부는 북한과의 접경지대에도 검문소 등을 강화해 탈북자들을 단속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탈북자와 밀수를 차단하고자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최첨단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도입한 ‘5G 검문소’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파즈르바오(法制日報)’는 국경경비대가 지린(吉林)성 지안(集安)과 가까운 윈펑(雲峰)에 5G 검문소를 짓기로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5G 검문소가 세워진다면 중국 국경수비대는 조종사 없이 비행 및 조종이 가능한 드론과 높은 선명도로 어둠 속에서도 물체의 움직임을 식별할 수 있는 4K 야간 감시 장치 등을 이용해 국경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과의 국경 철조망에 감시용 적외선 카메라와 폐쇄회로(CC)TV 등을 설치해왔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21세기판 만리장성’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73호에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