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유전자가위 기술 누가 먼저냐… ‘세기의 특허전’에 한국 가세

입력 | 2021-01-11 03:00:00

2012년부터 원천기술 특허 공방
UC버클리-브로드硏 양강구도서
韓기업 ‘툴젠’ 참여하며 판세 변화
최초 발명자 가리는 저촉심사 개시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둘러싼 이른바 ‘세기의 특허전쟁’에 국내 바이오벤처 툴젠이 가세하면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툴젠을 포함한 3자 가운데 누가 먼저 원천기술을 개발했는지를 두고 미국 특허청이 심사에 들어가며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10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원천기술에 대한 미국 특허와 관련한 ‘저촉심사’가 개시될 예정이다. 저촉심사란 동일한 발명을 한 2인 이상의 특허 출원인이 있을 경우 선(先)발명자를 가리기 위해 진행하는 심사다. 당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하버드대가 설립한 브로드연구소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양자 구도였지만 국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권위자인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가 공동 설립한 바이오기업 툴젠도 심사에 포함돼 3자 대결로 바뀌었다.

생명공학계의 혁명으로 불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DNA의 특정 염기를 잘라내 난치성 유전질환 치료가 가능한 기술로 향후 수십억 달러(수조 원)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특허 전쟁은 2012년 5월 시작됐다. 제니퍼 다우드나 UC버클리 교수 연구진이 실험실 수준에서 유전자 교정 가능성을 처음 제시한 ‘사이언스’ 논문을 근거로 미국에서 특허를 출원한 데 이어 툴젠과 브로드연구소가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의 진핵세포에서 유전자 교정에 성공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특허를 출원하면서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다우드나 교수는 지난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연구 업적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 특허청은 2017년 12월 ‘신속심사제도’를 통해 브로드연구소의 특허를 가장 먼저 등록했다. UC버클리 측은 브로드연구소의 특허를 인정한 미국 특허청에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해 왔다.

여기에 툴젠이 가세한 3자 구도로 바뀌게 된 것은 미국 특허청 산하 ‘미국특허심판원(PTAB)’의 결정으로 툴젠이 미국에서 특허 등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당초 미국 특허청의 특허심사관은 툴젠이 출원한 특허의 등록 거절 의견을 고수했다. 지난해 노벨상을 수상한 다우드나 교수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논문이 우선된다는 게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PTAB는 지난해 이 특허거절 의견을 파기했고 툴젠은 미국에서 특허 등록이 가능해졌다.

브로드연구소 특허 등록에 대한 UC버클리의 이의 신청, 툴젠의 원천특허 등록 가능 결정으로 미국 특허청은 지난해 12월 툴젠과 UC버클리, 브로드연구소 가운데 누가 앞선 발명자인지를 가리는 각각 세 건의 저촉심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8년 이상 지속된 생명공학계의 ‘세기의 특허전쟁’이 2라운드 양상으로 접어든 것이다.

툴젠에 따르면 툴젠은 UC버클리, 브로드연구소와의 저촉심사에서 ‘시니어 파티’로 분류돼 유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니어 파티란 진핵세포의 유전자 교정 관련 선출원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반면 UC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는 툴젠과의 저촉심사에서 ‘주니어 파티’로 분류돼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였다. 김영호 툴젠 대표는 “수년이 소요되는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며 “툴젠은 각 저촉심사에서 시니어 파티라는 위치를 선점했기 때문에 유리한 상황에서 권리를 확보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