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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슈퍼사이클[횡설수설/이은우]

입력 | 2021-01-11 03:00:00


10년 전인 2011년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는 누가 먼저 문을 닫을지를 놓고 예측이 난무했다. 반도체 업체들이 시장 수요보다 훨씬 많은 공급 물량을 너도나도 쏟아내면서 경쟁업체들이 먼저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이른바 ‘치킨 게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세계 3위 D램 업체인 일본 엘피다는 100원어치를 팔면 적자가 70원꼴인 상황이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도 삼성전자는 흑자를 냈다. 하이닉스는 그런대로 버텼다. 일본과 대만 기업들은 결국 손을 들었고 경쟁사들이 떠난 자리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초호황(슈퍼사이클)을 누렸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30% 가까이 늘어난 35조9500억 원을 나타냈다. 올해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2011년과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 등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통신이나 정보처리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올해 50조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예상치도 10조 원을 넘었다.

▷반도체 기업의 주가도 날개를 달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암울하던 지난해 3월 중순 4만2000원대였던 삼성전자는 ‘팔만전자’를 넘어 ‘십만전자’를 앞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년 남짓 만에 두 배로 올라 시가총액 100조 원을 돌파했다. 증권업계는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수혜자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꼽는다.

▷미중 갈등도 반도체 분야에선 한국을 도와주고 있다. 2015년부터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한국 기업과 경쟁하던 중국 기업들은 미국에 막혀 고전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여러 차례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려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반대로 실패했다. 중국 반도체 자립을 상징하던 국유기업 칭화유니그룹은 기술 없이 설비 확장에 나서다 지난해 11월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중국 파운드리 분야의 선두인 SMIC는 최근 미국 장외거래 주식시장에서 퇴출됐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1983년 반도체 산업 진출을 선언했을 때 해외 기업으로부터 과대망상증 환자란 얘기를 들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매년 수천억 원의 적자가 이어지자 그룹 내에서 반도체를 포기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지금은 반도체가 한국 경제 전체를 떠받치는 효자산업이지만, 하나의 산업이 성장하기까지는 확고한 신념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을 계승할 만한 미래 먹거리 산업이 나올지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이 같은 사실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