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남긴 것과 바이든이 갈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난입으로 폭력 사태가 발생한 미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워싱턴=신화 뉴시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따라서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 조 바이든의 당선을 헌법 절차에 따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것일 뿐, 그 과정을 뒤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단 하나, 주의 선거 결과에 대해 그 주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이 서면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상하원에서 각각 투표를 거쳐 이의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 주의 선거 결과는 계산에서 제외할 수 있다.
○ 현직 대통령이 불붙인 폭력행위
미국 민주주의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취약한 면을 드러냈기 때문에, 20일부터는 트럼프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인 사태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마디로 밑바닥을 쳤기 때문에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면 미국은 우리가 알던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돌아오는 것인가?
이번 사태 이후 수정헌법 25조 4항을 이용해 부통령과 내각이 대통령직을 박탈하는 방법, 그리고 의회에 의한 탄핵이 논의되고 있다. 폭도들을 선동한 트럼프를 처벌하고 그가 다시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라는 개인이 문제였다는 인식에 따른 해법이다. 트럼프만 아니면 되는 것인가? 또 트럼프 같은 사람이 나올 가능성은 없는가? 트럼프 같은 사람이 정치지도자가 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는가? 이런 질문들이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 규범과 타협 자리 대신하는 포퓰리즘
다시 2016년으로 돌아가 보자. 트럼프가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혼란에 빠졌다. 이런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어도 되는 건가? 그래도 많은 국민이 택한 후보인데, 다수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 아닌가? 그리고 한구석엔 ‘지금은 말을 저렇게 해도 대통령이 되면 달라지겠지, 미국의 대통령인데’ 하는 생각도 있었다. 지난 4년 동안 트럼프는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주의는 극단적 포퓰리스트가 정권을 잡게 되는 과정에서 그를 견제할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과연 제도의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헌법과 제도 측면에서 민주주의라는 틀은 유지되나 그보다 중요한 규범은 사라졌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이전에 빌 클린턴, 부시, 버락 오바마 정부를 거치면서 타협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상대 정당을 다른 의견을 가진, 그렇지만 타협해야 하는 경쟁자로 보는 게 아니라 끝끝내 물리쳐야 하는 적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협은 곧 내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권을 잡으면 법 안에서 주어진 모든 법적 권한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무력화한다. 나와 다른 정당의 대통령이라면 그가 하는 모든 입법 행위를 막아서고, 대통령은 타협을 통한 입법 대신에 행정명령으로 대체하는 게 일상화됐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른 견해를 가진 집단이 몇몇 핵심 의제로 뭉친 정당이 아니라 ‘정체성의 정치’를 하는 집단으로 변화하면서 타협은 더 힘들어졌다. 우리가 아는 작은 정부와 큰 정부, 개인의 자유와 공공의 복리와 같은 정치적 이념의 차이보다 백인과 유색인종, 개신교와 비개신교 같은 인종과 종교를 중심으로 정당의 지지층이 재편되면서 타협과 관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당을 내 정체성과 동일시하면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내 정체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의회 난입 사태를 주도한 대부분이 백인이고, 또 만약 이 시위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였다면 경찰이 이렇게 대응했겠냐고 비난하는 것 모두 정체성의 측면에서 해석이 된다.
○ ‘목적’이 사라지자 퇴행하는 민주주의
공화당은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된 후 트럼프와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트럼프가 약 7500만 표를 얻고, 그의 지지층이 압박하고, 또 트럼프 본인이 마지막까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화당 지도부는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인정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공화당 지도부가 이제라도 정당의 역할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국민의 뜻이 중요하지만 과거 미국 건국 당시 알렉산더 해밀턴이 우려한 대로 대다수 국민이 호도돼 선동가를 선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트럼프의 당선으로 증명되었다. 국민이 ‘좋은’ 후보를 두고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정당의 역할을 방임한 결과였다. 아무리 이상한 후보라도 상대 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 트럼프를 제도권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의 존재를 위협하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민주주의의 목적을 생각하기보다 민주주의라는 틀을 이용하는 데만 몰두한 결과물이다.
오늘날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실패는 과거 냉전 시기 군부세력의 쿠데타와 같은 방식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 국가가 정한 헌법과 법률의 절차에 따라 선거에서 당선된 지도자들이 당선 이후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독재정치로 나아가는 과정도 과거처럼 정적을 무조건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의 틀 내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헌법과 법률이 고쳐지기는 한다. 양극화된 정치 환경이 토양을 이루고 포퓰리스트 정권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면 결국 정치가 없어지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민주주의라는 틀은 존재하지만 민주주의는 사라진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