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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쌓인 화가 일으킨 ‘가려움증’[이상곤의 실록한의학]〈104〉

입력 | 2021-01-11 03:00: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병자호란의 상흔이 아물기 시작한 1641년, 재위 18년을 맞은 인조는 심한 가려움과 구토 증상을 호소했다. 어의들은 두 증상의 원인을 마음의 병에서 찾았다. “구토가 심해지면 가려움증이 약해지고 가려움증이 심해지면 구토가 약해지는 것은 겉과 속이 상응하는 것으로 심화(心火)가 극심해져서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속을 청량하게 맑히는 황련죽여탕으로 치료해야 한다.” 호란을 거치면서 입은 정신적 충격과 그 이후로도 계속된 심한 근심을 가려움증의 원인으로 본 것.

경종도 어머니 장희빈이 사약을 받아 죽자 가려움증을 호소했다. 당시 진료를 맡은 의관 김유현은 “어제 저녁부터 등과 배에 홍반이 여러 개 생겨 가끔씩 가려워했다”고 기록했다. 경종의 아버지 숙종 또한 몸에 열이 많기로 유명한 임금이다. 승정원일기에는 숙종의 가려움증에 대한 기록이 614차례나 보인다. 몸이 불에 타는 듯 열이 나는 훈열증(薰熱症)과 어지럼증, 소화불량 등 여러 증상을 함께 호소했지만 정작 본인이 가장 힘들어한 것은 가려움증이었다.

영조의 치료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가려움증 치료법이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자작나무 껍질인 화피 달인 물, 소금물, 온천수, 인진쑥 달인 물 등으로 씻거나 우황청심환, 패독산, 삼소음을 복용하는 등 갖가지 처방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은 가려움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영조는 재위 29년, 가려움증으로 고생한 지 5년 만에 치료법을 찾았다. “유황탕이 아주 효험이 좋아서 증상이 사라졌다.” 이 기록의 유황탕이 온천수 유황탕인지, 유황이라는 약물을 넣고 끓인 먹는 탕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동의보감은 가려움증의 원인을 몸에 쌓인 화(火)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이 불기운을 가까이 할 때 약간 뜨거우면 가렵고 몹시 뜨거우면 아프며 불에 데면 헌다. 이 모두 몸에서 일어나는 화의 작용이다. 가려움증은 열증이 약간 심한 것을 말한다.”

현대의학도 통증 유발 물질인 히스타민이 많으면 통증을, 소량일 때는 가려움을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가려움은 통증에 선행하는 증상이라는 얘기다.

남한산성의 혹한 속에서 백성을 사지로 몰아넣고 괴로워한 인조, 사약을 마시고 죽은 어머니를 외면해야 했던 경종, 당파싸움으로 견디기 힘든 괴로움을 호소했던 숙종과 영조 등의 가려움증은 모두 마음속 불꽃인 화가 일으킨 화병(火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가려움증은 피부가 흘리는 눈물인 셈이다.

가려움은 심리적 스트레스와 갱년기 등 정신신경질환이나, 습진 피부염 두드러기 등 피부과 영역, 간장과 신장 기능장애 및 당뇨병 등 내분비계 영역의 이상으로 유발된다.

1804년 유방암에 걸린 여인을 탕약으로 마취하고 수술한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명의(名醫) 하나오카 세이슈는 ‘십미패독탕’이라는 가려움증 처방을 고안했다. 인체는 어떤 자극에 대응해 기(氣)를 생성하는데 기가 많이 쌓이면 열(熱)이 되고, 그 열이 혈액과 수분을 데우면서 가려움증, 발작, 부종을 일으키는 독소를 만든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처방이 독소를 제거해 가려움증을 치료한다고 주장한다. 동의보감은 가려움증 치료를 위해 소금물로 씻거나 부평초, 자작나무 껍질, 인진쑥을 달인 물로 씻을 것을 권유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