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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지지층도 등 돌린 부동산정책[오늘과 내일/길진균]

입력 | 2021-01-12 03:00:00

백신에도 끼어든 진영논리, 부동산은 모두 분노
선거 앞두고 청년-직장인 與 지지기반 흔들




길진균 정치부장

“부동산 가격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장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집값 문제에 대해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부는 더 강력한 대책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했다. 이후 정부는 20차례가 넘는 대책을 쏟아냈다. 집값은 오히려 폭등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전세시장은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며 목표를 수정했다. 그리고 이달 11일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은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공식 사과했다.

대통령의 사과는 직무수행 지지율이 지난주 취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갤럽 기준으로 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내려앉은 것은 취임 이후 5차례뿐이다. 2019년 10월 조국 사태 때 39%, 그리고 지난해 8월 39%, 12월 1주차 39%, 2주차 38%였다. 그리고 올 1월 1주차가 38%다. 마지막 네 차례 모두 부정 평가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정책’이었다.

사실 우리 사회의 모든 논쟁적 이슈엔 진영논리가 개입돼 있다.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정부 대응에 대한 평가도 진영에 따라 엇갈린다. 동아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백신 도입 시기 논란에 대해 54.1%는 ‘정부가 잘했다’, 44.2%는 ‘잘못했다’로 팽팽히 맞섰다. 자신의 정치 성향이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의 67.6%는 부정 평가를 했고, 진보 성향 응답자에서는 긍정이 76.5%로 나타났다. 전염병은 과학의 영역이지만 여기에도 진영논리가 반영됐고, 결국 여론이 이분화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태극기부대는 문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반대나 비판을 하고, 강성 친문(친문재인) 지지자들은 여권의 비상식과 위선이 계속 드러나도 ‘문재인 대통령은 늘 옳다’는 식이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만큼은 예외다. 신년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긍정 평가는 22.4%에 불과했다. 응답자 10명 중 7명가량인 69.5%는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도층의 73.8%가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현 정부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40대조차 부정 의견이 66.0%로 집계됐다. 정부 말을 믿고 아파트 매수를 미룬 30, 40대 직장인,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서민과 청년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 흔들렸다.

여권의 고민이 컸을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지면 다가오는 4월 재·보궐선거에서 대통령 마케팅이 힘들어진다. 당 지지율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2022년 대통령 선거 전초전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정치적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여야 모두 놓칠 수 없는 선거다.

여권이 뒤늦게 수요 억제 일변도 정책의 수정을 예고하고 나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완화를 거론했고,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토교통부 장관은 신년 벽두부터 ‘공급 확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공공주택 16만 호 공급’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선거를 앞두고 여권이 던지는 정치적 레토릭이나 공약(空約)이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다만 집권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역시 선거고, 자신들의 지지층인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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