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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지배하는 것[임용한의 전쟁史]

입력 | 2021-01-12 03:00:00


조선시대에 과거에 급제해서 문관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문무 겸비는 기본이었다. 야전에서 전투를 벌이는 능력은 없다고 해도 병서를 읽고, 군을 지휘하고, 동원·병참 등 군사행정을 처리할 줄은 알아야 했다.

남원의 선비였던 조경남은 임진왜란, 정묘·병자호란을 모두 겪었다. 임란 때는 의병장으로 전투에 참전했다. 문무 겸비에 실전 경험까지 갖춘 그는 3대 전란을 기록한 난중잡록과 속잡록이란 전사(戰史)를 남겼다. 전사 기록물이 안타까울 정도로 부족한 우리 역사에 저자의 경력으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희귀하고 소중한 기록이다.

조경남의 저서는 다른 기록에 비하면 설명도 구체적이고 풍부한 편이다. 그러나 전사로서는 여전히 소략하고 구체성이 부족하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 것이, 그가 참조한 기본 사료와 문서들이 간략한 보고서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이해하지만 ‘가짜 뉴스’, 감정적이고 단순한 전황 분석은 누구의 탓일까.

조선은 그 어떤 사회보다 문맹률도 낮고 식자층도 많은 나라였지만, 철학적 사변과 문학적 글쓰기에 너무 치중해서 실용적 사고, 육하원칙에 의한 과학적 설명과 실용적 글쓰기 훈련이 너무나 부족했다. 이런 글쓰기 문화는 역으로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사건을 목격해도 눈과 두뇌가 현장 상황을 분석하기보다는 평론이 앞선다. ‘장군이 겁을 먹어 병사들이 무너졌다’, ‘장군이 큰 소리로 호령하고 도망치는 병사의 목을 베자 병사들이 용기백배해서 싸웠다’는 식이다.

전장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건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아군과 적의 무장 상태가 어떻고, 어떤 지형에서 몇 m를 돌격했는지 이런 문제는 관심도 없다. 수많은 변수가 지배하는 전장을 한두 가지 요소로 재단해 버리니 세상을 단순하게 보게 되고, 분석보다는 감정적 비방이 앞선다. 이러니 가짜 뉴스에도 쉽게 속는다.

조선은 500년 동안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도 안타까운데, 21세기가 된 요즘 교육이나 지적 풍토가 도리어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