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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김학의 출금 요청기록 수정뒤 삭제… “위법 알았던듯”

입력 | 2021-01-13 03:00:00

진상조사단 검사, 가짜 사건번호로 출금 관련 서류 2건 불법신청 의혹
金 피의자 아니라 출금대상도 안돼… 법무부, 출금 이틀뒤 내부전산망서
요청기관 수정뒤 삭제해 공란 남겨… 법무부-檢간부 무리한 뒷수습 정황
논란 커지자 “급박 상황 고려” 해명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을 막기 위해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이규원 검사가 긴급 출국금지 서류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심사과가 김 전 차관을 출금해 달라는 이 검사의 요청 사실을 내부 전산망에서 한 차례 수정한 뒤 삭제한 사실이 12일 밝혀졌다. 당시 출입국심사과 직원들이 “검사가 아닌 수사기관의 장이 출금을 요청할 수 있다”는 문서까지 공유해 법무부가 김 전 차관의 출금 절차가 위법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비판이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 출금 요청 ‘진상조사단→이규원 검사→공란’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된 김 전 차관 출금 의혹 관련 공익 신고서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2019년 3월 23일 0시 10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공항직원들에게 긴급 출금 대상이라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김 전 차관이 타려던 태국행 비행기가 이륙하기 10분 전이었다.

이 검사는 2분 전인 0시 8분경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김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금 요청서’를 보냈다. 이 검사는 ‘중앙지검 2013년 형제65889호 등’ 사건과 관련해 출금을 신청한다고 요청서에 적었다. 이 사건은 과거 김 전 차관이 이미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이었다.

이 검사는 3시간 뒤 법무부에 “긴급 출금 요청을 사후 승인해 달라”는 요청서를 다시 보냈다. 이번에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서울동부지검 내사 1호 사건’과 관련해 출국을 막아 달라”고 기재했다. 이 검사는 한찬식 당시 서울동부지검장 직인 자리에 ‘代 이규원’이라고 서명해 동부지검장이 승인한 것처럼 서류를 작성했다.

이 검사의 당시 긴급 출금 요청은 요건과 절차가 모두 맞지 않아 위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입국관리법상 수사기관의 장은 3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금고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는 피의자에 대해 긴급 출국금지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검사는 당시 대검 조사단 소속으로 강제 수사권이 없었고, 기관장도 아니었다. 김 전 차관도 당시 피의자 신분이 아니었다.

이 검사가 긴급 출금을 요청한 사실은 법무부 내부 전산망인 ‘출국정보 시스템’에 남아있지 않았다. 법무부는 김 전 차관에게 출금 사실을 알린 지 24분 만인 2019년 3월 23일 0시 34분 내부 전산망의 ‘출국금지 요청 기관’란에 ‘과거사 진상조사단’이라고 적었다가 2시간여 뒤 ‘이규원 검사’라고 고쳤다. 이어 25일 오전 9시 20분경에는 ‘이규원 검사’라는 표현까지 지우고 요청기관을 이례적으로 공란으로 남겼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법무부 직원들도 강제 수사권이 없는 이 검사 등의 긴급 출금 조치를 받아들인 것이 위법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기록을 수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가 당시 긴급 출금 과정의 위법 소지를 인지한 정황은 또 있다. 출입국심사과 직원은 2019년 3월 “수사기관이 긴급 출금을 단독으로 신청하는 건 불가능하고 ‘수사기관의 장’으로 제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공유했다.

위법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는 12일 “조사단 소속 검사는 ‘서울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 발령을 받은 수사기관에 해당하므로 긴급 출금 요청 권한이 있고, 당시 중대 혐의를 받고 있던 전직 고위공무원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했다.

○ 이성윤 이종근 등 검찰 간부들 사후 수습

긴급 출금 이후 당시 친정부 성향의 법무 검찰 간부들이 뒷수습에 나섰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출금 이튿날 서울동부지검장에게 “검사장이 내사 번호를 추인한 것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이 검사가 소속된 수사기관의 장이 긴급 출금 요청을 승인한 것처럼 형식을 갖추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이었던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이 사후 처리를 지시했다는 정황도 있다. 출입국심사과의 한 직원은 당시 카카오톡 단체방에 “정책보좌관 한 분 계속 와서 얘기하는데, 검사님이셔. 자기네 문제 생길까봐. 오전 내내 심사과 와서 지시하다 감”이라고 했다. 또 다른 직원은 “(요청기관이) 중앙지검이 아니에요. 직원이 사건 번호 보고 착각한 듯. 양식도 관인도 어떡하죠”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배석준 eulius@donga.com·고도예·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