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일주일 앞으로] <上> 北-美관계 ‘운명의 1년’ 시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년 동안 축적해온 핵과 미사일 무기고를 언급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얼마나 어려운 도전을 앞뒀는지 냉혹하게 상기시켰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안보 라인 인사들과 가까운 에번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12일 동아일보에 보낸 이메일에서 김 위원장이 8차 노동당 대회에서 쏟아낸 메시지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김 위원장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신형 핵무기들을 내세워 미국에 당장 수용하기 어려운 협상 조건을 내밀면서 험로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13일로 출범(20일·현지 시간) D―7을 맞은 바이든 행정부는 이에 대해 아직 아무런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북한을 상대해온 베테랑 외교관들이 포진한 만큼 섣불리 나섰다가 비핵화 범위조차 합의하지 못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비어 전 차관보도 “바이든 행정부가 ‘미끼’를 물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다. 김 위원장 연설에 대해 언급을 피하면서 대북 정책을 마련할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 3월 한미 연합훈련이 첫 분수령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중단을 요구한 한미 연합훈련이 열리는 3월이 한반도 정세의 첫 번째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며 핵 도발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고비를 넘기면 7월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북-미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지만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명확히 하지 않는 이상 본격적인 협상에 시동이 걸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봤다. 올 한 해 한반도 정세가 강 대 강 대치로 격화될지, 협상 재개의 기회를 잡을지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핵개발 위협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뒤 바이든 행정부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이대로 갈 것이니 출범 이후 어떤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지 잘 선택하라’며 공을 넘긴 것”이라고 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동아일보에 보낸 이메일에서 “김 위원장은 핵보유국으로서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했다.
이는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기 한 해 전인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발사하며 미국에 대한 위협을 극대화했던 패턴과 비슷하다. 북한이 도발로 협상력을 높여 놓은 이후인 2018년 3월 정부 특사단이 평양에 다녀온 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밝혀 북-미 정상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결국 2019년 비핵화에 대한 개념과 범위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협상은 결렬됐다.
○ 바이든, 섣불리 ‘미끼’ 물지 않을 듯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위협에 섣불리 반응하지 않으면서 외교 접촉을 통해 북한에 비핵화 의지와 이행 계획이 실제로 있는지 먼저 확인하려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핵 문제를 전담하는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임명해 북한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면 북-미 접촉이 예상보다 빨리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접촉에 나서더라도 북핵 문제에 대해 원칙적으로 접근하면서 실무 협상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어 나가는 보텀업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소식통은 “트럼프처럼 북핵 문제를 풀어 가리라는 기대는 무리”라고 지적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