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픽사 김재형 애니메이터 디즈니 첫 흑인 주인공 ‘조 가드너’ 의사길 접고 새 꿈 좇는 저와 닮은꼴 ‘즐기며 살아도 된다’는 메시지 울림
디즈니·픽사의 김재형 애니메이터(가운데 사진). ‘소울’에서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을 안고 사는 음악 선생님 ‘조 가드너’가 뉴욕 최고의 밴드와 협연하는 기회를 딴 뒤 기뻐하는 장면(왼쪽 사진). 마침내 공연을 하지만 이후 몰려오는 허무함을 경험한 조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꿈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40대 흑인 캐릭터.
20일 개봉하는 피트 닥터 감독의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은 여러 면에서 기존 디즈니·픽사 작품들과 다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처음으로 흑인 캐릭터 ‘조 가드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영화의 메시지 역시 희망적인 여느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무겁고 심오하다. 학교 음악 선생님 조는 자신에게 꿈의 무대와 같았던 재즈 클럽에서 유명한 밴드와 공연을 하게 되지만, 꿈을 이뤘다는 충만함보다 ‘이게 다야?’라는 허무함을 느낀다.
12일 인터넷 화상 통화로 만난 김재형 애니메이터(48)는 소울에 대해 “기존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에서 벗어난 작품”이라고 입을 열었다. 2008년 픽사에 입사한 그는 ‘업’ ‘인사이드 아웃’ ‘토이스토리 4’ 등에 참여해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만들었다.
흑인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흑인인 공동 연출 켐프 파워스와 사내 흑인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영화 제작 도중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의 과잉 진압으로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해 인종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기에 영화에 편견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 썼다.
“켐프가 흑인 문화, 움직임, 표정 등에 대해 애니메이터들에게 많은 조언을 줬습니다. 공교롭게도 제작 중 미국 내 인종갈등이 심각해졌기에 ‘이 문화는 이럴 거야’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제대로 그들의 문화를 반영하려고 했어요.”
‘업’ ‘인사이드 아웃’ ‘토이스토리’ 등 닥터 감독과 다수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지만 조가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는 오디션 신만큼은 연출이 까다로웠다고 털어놨다.
“닥터 감독은 본인이 원하는 게 확고한데 애니메이터가 그걸 찾는 게 쉽지는 않아요. 특히 조의 피아노 연주 신에서 그가 무아지경에 빠진 모습을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죠. 손가락 움직임은 정확하면서도, 표정과 몸동작은 꿈을 꾸는 것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원했거든요.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인 장면인데 결과적으로 만족해요.”
“부모님과 한동안 대화를 단절했을 정도로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가 좋아서 택한 애니메이터의 길이지만 그럼에도 일에서 오는 힘듦과 치열함이 있어요. 좀 더 여유를 갖고 즐기며 살아가도 된다는 소울의 메시지가 제게도 울림을 줬습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