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수 경제부 차장
지난해 5월 1차 지원금으로 4인 가족당 100만 원의 현금을 지급한 뒤 문재인 대통령은 한우와 삼겹살 매출이 급증했다며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다. “기부에 참여하는 국민들께도 특별히 감사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우선 국민의 99%가 기부하지 않고 지원금을 받아갔다. 더군다나 1차 지원금으로 뿌린 14조 원 중 소비 증가로 이어진 건 30% 정도였다. 이마저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음식업, 대면 서비스업으로 흘러가는 효과는 미미했다. 나머지 70%는 빚을 갚거나 저축하는 데 사용됐다. 이게 지난해 말 발표된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 결과다. KDI는 전 국민에게 일괄 지급하기보다 피해 계층을 선별 지원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코로나19 충격은 주로 음식·숙박, 도소매, 여행 등 대면 산업과 그 종사자들을 강타하고 있다. 이와 달리 언택트(비대면) 특수에 힘입어 반도체 인터넷 배터리 게임 등 첨단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집콕’의 일상화로 자동차 가전제품 같은 내구재 소비가 늘면서 관련 기업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이는 코로나발(發) ‘K자’형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알파벳 K처럼 계층, 산업, 직종, 고용 상태 등에 따라 코로나19 충격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소득 상위 20% 계층의 월 소득은 2.9% 늘어난 반면 하위 20%는 1.1% 줄었다. 22년 만에 최대로 감소한 작년 취업자를 봐도 상용근로자는 늘었지만 임시·일용직은 41만 명 넘게 줄었다.
추가 재난지원금은 모두 적자국채로 조달해야 할 처지다. 이미 1∼3차 지원금 지급 등으로 예산을 펑펑 쓴 탓에 재정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올해 정부 예산은 사상 최대인 558조 원인데, 세수가 부족해 90조 원 이상의 국채를 찍어 메워야 한다. 현 정부 출범 당시 660조 원이던 나랏빚도 올해 956조 원까지 늘어난다. 4차 지원금으로 추경을 또 하면 1000조 원 돌파는 시간문제다.
현실이 이런데도 여권이 전 국민 지원금을 밀어붙인다면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표만 생각하는 ‘포퓰리즘 정부’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정치권은 무분별하게 돈 뿌릴 궁리 말고 K자형 양극화가 불러온 불평등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4차 지원금 지급에 앞서 취약계층의 피해와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 국무총리 말마따나 더 이상 ‘더 풀자’와 ‘덜 풀자’ 같은 단세포적 논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