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대검에 “적법절차 준수” 밝힌 검사, 사흘뒤 가짜서류로 출금 요청

입력 | 2021-01-14 03:00:00

김학의 출금 주도한 이규원 검사
대검서 “출금 어렵다” 답변에 “의견없는 걸로 정리” 동의 해놓고
다시 입장 바꿔 김학의 출국 막아… 野 “잦은 변경 석연치 않아”
연수원동기인 이광철 靑비서관, 출금조치 9일전 윤규근과 대화




“현재 상태에서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가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2019년 3월 19일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이규원 검사는 대검 기획조정부 A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단 회의에서 김 전 차관 출금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대검 의견을 달라”며 이같이 요구했다.

이튿날 오후 1시경 대검이 의견을 회신하지 않자 “금일 중 조치가 가능하도록 신속히 해 달라”고 독촉했다. 하지만 A 검사는 ‘고려사항’이라는 메모를 전달하며 사실상 출금이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 검사는 같은 날 오후 5시경 “저희 팀은 적법절차 준수 등을 감안해 의견이 없는 걸로 정리했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하지만 사흘 뒤 이 검사는 가짜 사건번호를 근거로 긴급 출국금지 요청서를 법무부로 보내 해외로 출국할 예정이던 김 전 차관의 심야 출국을 막았다. 정치권에선 이 검사의 입장이 자주 바뀌게 된 경위가 석연치 않으며, 그 배경에 청와대 관계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적법” 언급 사흘 뒤 가짜 서류로 출금 요청


A 검사가 법무부 등의 확인을 거쳐 작성한 고려사항이라는 메모엔 김 전 차관 사건은 2013년과 2015년 무혐의 처분이 있었고, 조사단 진상조사 결과는 과거사위원회에 보고되지 않았다고 돼 있다. 또 고 장자연 씨 사건처럼 조사단의 재수사 권고가 일부라도 있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피의자 신분이 아닌 김 전 차관을 출금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취지다.

하지만 이 검사는 2019년 3월 23일 0시 8분과 오전 3시 8분 총 두 차례에 걸쳐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긴급 출금 요청서를 보냈다. 첫 번째 요청서엔 무혐의 처분이 난 서울중앙지검의 사건번호를 기재했고, 두 번째엔 존재하지 않는 서울동부지검의 내사 사건 번호를 썼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의 장이 3년 이상 징역형이나 금고형이 가능한 피의자에 대해서만 긴급 출금을 법무부 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는데, 서울동부지검장 직인 자리엔 직인 대신 ‘代 이규원’이라고 서명했다.


○ 출입국정책단장, 출금요청서 사후 승인 거부

이 검사는 출금 요청을 할 때 술을 마시다가 조사단이 위치한 서울동부지검으로 이동해 업무를 처리했다고 한다. 당시 사정을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이 검사가 한밤에 검찰청사로 와서 요청서를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입장을 갑자기 바꾼 배경을 알기 위해선 당일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등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긴급 출금 요청서는 결국 사후 승인 과정에서 논란을 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용근 법무부 출입국정책단장이 결재에 난색을 표하자 김 단장을 건너뛰고 출입국본부의 상급자인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본부장이 결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 번째 요청서가 접수됐을 때 한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직원은 “양식도 관인도 어떡하죠”라며 형식에 문제가 있다고 출입국본부 관계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법무부 출입국심사과의 B 계장은 3월 20일 김 전 차관에 대한 출입국 기록을 조회하고 이를 정보보고 형태로 두 차례에 걸쳐 차 본부장에게까지 보고했다.


○ 야당 “‘이광철-이규원’ 라인 작동 의심”

정치권과 검찰 내부에선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과 이 검사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이 비서관과 이 검사는 사법연수원 36기 동기다. 연수원 수료 뒤 2년 동안 같은 법무법인에서 활동했다.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은 “긴급 출금뿐 아니라 김 전 차관 사건을 증폭시키는 데 ‘이광철-이규원’ 라인이 작동했을 여러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이 비서관이 김 전 차관 사건을 언급한 일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3월 18일 “검찰과 경찰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며 김 전 차관의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 나흘 전인 3월 14일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국회에서 “(별장 성접대 의혹) 영상에서 김 전 차관의 얼굴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었다”며 검찰의 김 전 차관 불기소 처분을 비판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한 윤규근 총경이 해당 기사를 이 비서관에게 보내며 “이 정도면 됐나요”라고 하자 이 비서관은 “더 세게 했어야 했는데” “검찰과 대립하는 구도를 진작에 만들었어야 하는데”라고 답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고도예 기자